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만난 사람들 223

남편의 직장동료 부부를 집으로 초대하다 - 만나야 하는 이유

남편이 상주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비상근무를 시작해 예년처럼 남편을 지원해 주기 위해 남편의 동료 Jermey 가 출장을 와 올핸 그의 부인도 함께 저녁 식사에 초대를 했다. 본문과 관계없는 댓글과 복사댓글은 삼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남편과 남편 회사 검사원들은 원자력 발전소에 1명씩 상주해서 일을 하기에 서로 대면접촉이 많지 않은 데다 대부분이 내 남편처럼 사회성이 좀 부족하고, 본인들의 성격을 알아서인지 돈보다 혼자 근무해서 사람이나 일에 스트레스 덜 받는 것이 좋아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동료들끼리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별로 없는듯했다. 그런데 7년 전인가 남편이 출장 지원을 갔다 오면서 동료 부인이 주더라며 쿠키를 가져왔다.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에 누군지 궁금했..

내 한국 방문을 특별하게 해 준 블로그 덕분에 만난 인연들과의 첫만남

지난 5월 중순에 한국을 방문했을때 블로그 덕분에 만났던 귀한 분들을 처음으로 직접 만나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영향님은 독일에 사시는 분으로 블로그 덕분에 초대받아 가입했던 카페 동아담소실에서 만나 제가 연배가 적어니 1년에 몇번씩 카톡으로 안부를 전하고 있습니다. 년초에 영향님께 제가 5월 21일에 한국을 간다고 했더니 제가 한국 가기 한달전에 영향님께서도 갑짜기 한국에 가고 싶어 지셨다며 저보다 10일 늦게 한국에 오신다고. 그런데 둘다 서울과 지방으로 다니느라 일정이 맞지 않아서 영향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셨을때 투숙하시는 호텔로 방문해 잠깐 인사만 드리려고 했는데, 영향님께서 울산가셨다 하루 일찍 올라오신다며 일요일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어렵게 만난 영향님과 함께 사모님이신데 제가 남대문 시장에서..

멋진 사람 김혜수 배우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 만난 주인공의 인생에서 배울 점도 많고, 성찰하게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되기에 인터뷰 기사를 즐겨 읽는다. 내가 즐겨 읽는 인터뷰는 한국일보 김지은 기자와 조선일보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다. 오늘 김지은 기자님의 김혜수 배우 인터뷰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김혜수 배우는 당당해서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3부에 걸친 그녀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 그녀는 배우가 아닌 사람으로서도 충분히 멋지고, 현명했다. 그녀는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닌 성장"이었고, "시간과 더불어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가 사람"이고, "좋은 건 정보건, 지식이건, 좋은 말이든 나눈다는 그녀는 "국가 부도의 날" 시나리오를 보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니 나와 생각이 같고, 정치성향도 비슷할것 같아서 더 좋았다. ..

대학생 손녀와 둘이서 주립공원에 놀러온 복많은 할머니와 예쁜 손녀

옛 이웃친구들과 주립공원에 갔을 때 할머니를 모시고 온 예쁜 여학생을 만났다. (예쁜 소녀와 함께 온 할머니를 만났다?) 난 셀카를 잘 못 찍기도 하고, 또 셀카는 얼굴 사진만 나오고 뒷 배경은 잘 나오지 않기에 함께 온 일행들과 단체사진을 부탁하기 위해서 일행이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사진 찍어줄까 하고 제의를 한다. 그러면 거의 98%는 고맙다며 사진을 부탁하고, 너희들도 찍어줄까? 하고 묻는다. 지난 금요일에도 그 손녀에게 네 할머니와 함께 사진 찍어줄까 물었더니 바로 땡큐라며 두 사람이 엄청 고마워했다. 시카고에서 할머니와 함께 놀러 온 손녀 Anastassia (20세) & 할머니 Yelena (70세). 손녀는 얼굴도 마음처럼 예뻤고, 말도 조용조용하니 예쁘게 했다. 할머니는 러시아 출신이..

내가 힘들었을때 나의 구세주였던 옛이웃친구들과

26년 전에 오르간 작은 동네로 이사 갔을 때 내 이웃이었던 친구들과 1년에 한번씩 만나 함께 하는데, 올핸 린다가 60살, 케시가 70살이 되기에 오늘 생일 축하도 해 주고, 셋이서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기분좋은 하루를 보냈다. 겨울이 시작되던 길목에 데이비드가 태어났을 때 16개월 된 앤드류는 아침만 먹고 나면 두손에 신발 한 짝씩을 잡고 집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때 린다는 어린아이 셋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있었기에 그녀 집에 엄청 자주 갔던것 같다. 그리고 데이빗이 태어났을 때 린다가 우리 이웃들과 자기 친구들을 초대해 베이비 샤워까지 해 주었다. 그때 혼자서 어린 아이 둘 데리고 외출할 엄두도 나지 않았기에 케시가 자기 차를 운전해서 함께 가주곤했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케시의 큰딸 제시카가 베이비..

민망하리 만큼 너무 솔직했기에 더 울림이 컸던 Love Warrior

"Love Warrior" 은 저자 Glennon Doyle Melton의 회고록으로 뉴욕타임즈 베스트 셀러이기도 하다. Glennon 은 10살 때부터 엄마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예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기도 엄마처럼 예쁘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데, 자긴 살이 쪄서 아이들이 자길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이어트를 하고 싶었지만 먹는 것을 좋아해서 불가능했다. 어느 날 우연히 티브에서 몸매 관리를 위해 음식 먹고 토하는 것을 본 후로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해 거식증을 앓게 되었고, 고등학교 3학년땐 자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10학년 (한국의 고1) 때 남자 친구와 첫 경험을 했는데 그것은 그녀에게 그냥 일어난 일 같았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공부보단 남자..

가장 아름다왔던 장례식 (메모리얼 서비스)

교회 지인이셨던 고든 씨의 지난 4월에 소천하셔서 5월에 장례식 대신 메모리얼 서비스가 있었다. 고든 씨가 93세로 아쉽지 않은 삶을 사셨고, 마지막 달에 병원생활을 하셨지만 크게 고생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3일 전에 호스피스텔으로 옮겨셨을때도 가족들이 다 함께 그의 곁을 지켰으며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사랑하는 주님 곁으로 가셨으니 대부분의 나이드신 분들이 희망하는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싶다. 고든 씨는 약사생활을 하시면서 피아노 조율을 배워서 돌아가시기 몇 년 전까지 피아노 조율사로도 일을 하셨다고. 아버지 영향을 받아 외아들 폴은 오르간 연주자다. 고든 씨 부부와 딸 죠디부부는 우리 교회가 처음 시작할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오랫동안 교회일을 많이 했는데, 고든 씨의 메모리얼 서비스에 ..

1년에 만난 그녀

스텔라는 타이완계 친구로 싱글맘인데, 시카고까지 출. 퇴근하면서 댄스 하는 중학생 딸과 축구하는 고등학생 아들 연습과 대회에 운전해주랴 응원다니랴 정말 바쁘다. 내 영어선생과 결혼해 미국으로 왔기에 부모님과 동생들은 모두 타이완에 있는데 다행히 전 남편과 그의 가족들이 인근지역에 살고 있었어 그녀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잘 도와주는 편이다. 아직 둘 다 혼자인데, 이혼 후 관계가 더 좋아졌단다. * 자기가 이젠 아내도 아니니 상관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마 그래서 더 좋아진 듯. 스텔라가 많이 바빠서 미리 약속하지 않음 시간을 못내기에 지난 4월 초에 8월 둘째 주쯤 주말에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걸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점심을 함께 먹자고 했는데, 스텔라가 내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고, 우리 집 근처..

헐리웃 인근의 집으로 초대해 준 블친

달라스 인근에 사는 블로그 친구 덕분에 3년전에 할리웃 이웃에 사는 모하비님이 모하비의 모험 Adventures of Mojave (tistory.com) 시카고에 와 계실때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해 우리집에서 셋이서 함께 처음 만났는데, 셋다 여행도 좋아하고, 서로 케미가 잘 맞았다. 그래 매년 한번씩 셋이 함께 여행을 가던지 만나기로 했다. 지난해엔 달라스 사는 블친이 본인 집으로 초대해 주어서 그곳에서 만났고, 올핸 모하비님이 우리 둘을 댁으로 초대해 주셨다. 3,500 km 나 되는 아팔래치안 트레일을 완주했고, L.A 지역 등산 고수들이 활동하는 씨에라 클럽 주요멤버시라 그 많은 캘리포니아 산들을 비롯해 미국 주요 산들을 많이 다녀셨는데, 작은 자석 사진을 기념으로 만들어서 냉장고 옆에 장식해..

한세기동안 이땅에서 소풍을 즐기다 천국으로 간 내친구 돌리여사

내 친구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돌리여사가 지난 7월 3일에 천사가 되어 천국으로 가셨다. 그녀는 1922년 12월 22일에 태어나 한세기하고 1년을 더 사셨는데, 마지막 몇달 전까진 샤워도 본인이 직접하며 건강하게 사셨고, 두딸과 손주들이 그녀가 사는 곳 근처에 살아서 수시로 딸과 손주들이 방문을 해주었으니 다들 노년을 그녀처럼 보냈으면 했다. * 그녀는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때 양로원 한단계 아래인 Assisted Living Home 에 사셨다. 그녀는 그녀가 지은 예명인 Dolly 처럼 101세에도 귀여우셨다. 말 그대로 그녀의 존재가 선물이었다. 그녀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못했지만, 지난 4월 부활절에 이바네에서 그녀와 함께 보낼수 있었어 위로가 되었다. 돌리여사는 전업주부로 지내다 은퇴한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