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만난 사람들

Woodcock 씨와의 소중한 인연

앤드류 엄마 2011. 1. 21. 07:19

 

 

 

 

 

 

 

지난 추수감사절에 Woodcock 부부께서 시카고에 사는 아들집에 왔다가 우리집을 방문했다.

시누남편이 갑짜기 돌아가셔서 경황이 없었지만, Mr.Woodcock 부부는 1-2년에 한번씩 

아들집에 오셔야 뵐수있고, 시누남편을 보듯 앞날을 알수없기에 모처럼의 방문을 취소하지 않고 

오랫만의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2년전 추수감사절에 뵐때보다 많이 수척해지셔서 놀랬더니 지난 여름 이집트로 여행가셨다가

물이 바뀌어서 그런지 오랫동안 배탈을 앓아 20 파운드나 빠졌는데 지금 회복중이시란다.

부인 Jill 은 지금이 딱맞다며 더이상 회복할 필요가 없다고 하길래, 난 그곳은 그렉이 가보아

한다며, 남편에게 그곳에 출장갈일 있는지 알아보라고 한술 더 떴다.

 

Woodcook 씨는 20년전 내가 다니던 직장에 GE 의 기술고문으로 오셨는데,

우리부서와 관련이 있어 내가 사무실일과 함께  Woodcook 씨를 비서일을 해드리게되었다.

부인은 미국에서 교사로 재직중이어서 혼자 회사에서 제공하는 아파트에 사셨는데, 
혼자사는 외국인들과는 달리 유흥이나 접대를 멀리하고, 퇴근후 여가시간엔 주로 독서와 음악으로

소일하시며, 음식도 항상 본인이 직접하시고, 일요일엔 교회에 다니면서 한국의 고아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시곤 했다.

 

그분은 참으로 검소하셨는데, 몇십년된 전자시계를 착용하고 계셨고, 
당신아버지께서 사용하시다 물려주신 거의 골동품수준인 가죽서류가방을 들고다녀셨는데,

어느날 끈이 떨어졌다며 어디서 수선할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해 날 넘어가게 만드셨다. 

   

골프는 든다고 하지않았지만,  해마다 부인과 항상 장기간 해외 여행은
다녀셨다.  그때 벌서 지구의 반은 더 다녀셨던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일년에 한두번씩 꼭 부부가 보름이상씩 해외을 다니신다.  

 

사실 남편과 결혼을 하게 것도 Woodcook 영향이 컸다.  
난 영국신사(부부가 런던 인근출신)인 그분을 참 많이 존경했는데,

결혼전 남편은 그분과 닮은점이 많아서 그런지 이미지도 비슷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검소한부분만 닮은것 같다

두사람이 관련분야와 성격이 비슷해서인지 대화가 잘통한다. 

난 Mrs.Woodcock 더 친해져 전화할때도 그녀와 통화를 더 오래하게된다.

 

남편을 만나기전 난 미국 여행을 왔는데 알바니근처에 살고있는 친구집에 갔을때

그때 Woodcook 씨는 한국에서 2년근무하고 본사로 돌아가셨는데, 그분집이

친구집과 30분 거리에 있어 Woodcock 부부와 반가운 재회를 했다.

다음날 Woodcook 부부가 집으로 저녁식사초대를 해주셨고, 

친구와 나에게 부부가 일일관광도 시켜주셨다.

 

한국에서 Woodcook 씨가 자신의 집을 설명할때 2층집에 수영장도 있다고 해,

Woodcook 씨는 영국  캠브리지대학 출신의 대기업 GE고급엔지니어고, 부인이 교사라

해마다 장기해외여행도 다니고 하니 집이 영화속에 나오는 저택인줄알았는데, 

가보니 벽돌집도 아니고 나무집이라 쬐금 실망을 했다.(그땐 미국에 대해 잘 모를때라) 

그때 환상속의 미국이 아닌 실제의 미국을 보았기에 남편과 결혼할때 미국에 대한 환상같은것은 없었다.

 

그분은 내가 남편과 결혼할 예정이란 소식을 친구남편에게 들었다면서 축하와함께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위안과, 결혼선물을 한국으로 보내야하는지, 미국으로 보내야 할지 알려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셨다. 
우리가 결혼했을때에 친구가 그곳에 계속 살 있었기에, 남편과 함께 친구집을 방문했고,

Woodcook 집에도 방문했다.

 

한국이 물질보단 가정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직원들의 애사심과 성실성이 특히

인상깊었다고 하시길래,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 했더니 미국닮으면 안된다면서

많이 안타까와 하셨다.   지금 한국을 보셨으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영국은 150년전에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로 자기집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본인까지

3대째 엔지니어인데, 한국은 불과 몇십년만에 1세대 엔지니어를 배출하고 이렇게 성장한것은 기적이라고

늘 한국을 대단한 나라라며 칭찬하시는데, 정작 우리 자신은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Woodcook씨는 올해 칠십구세이신데, 은퇴한뒤에도 GE 에서 계속 근무해 달라고 아직도

4 하루 4시간씩 엔지니어로 근무 하시는데, 회사에서 가장 연장자라신다. 

젊었을때 자기 상사가 관리직으로 가라고 했는데, 자신은 관리자형이 아니니

그냥 엔지니어로 남겠다고 했단다.  그때 본인의 선택이 옳았던것 같다. 

관리자 했음 지금까지 일을 할수 없었을것이기에. 

일을 하니 생각도 몸도 젊어지니 좋다고 하시니 앞으로도 계속 더 근무하시게되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께서 96, 아버지 98세에 돌아가셨으니 아마 당신은 백수를 하실거라고 했는데, 

건강관리를 잘 하시니 장수하실수 있을것 같다.

  

검소하시니 여전히 부부가 휴대폰도 없으시고,

차도 한대뿐이어서 부인이 남편 출근시켜주지만

우리아이가 태어날때마다 가 선물을  보내주셨다. 

평소엔 근검절약하지만 돈을 써야 할땐 썰줄 아는 두분을 존경하고,

존경하는 분을 만나게 되어 행운이라 생각한다.

모쪼록 두분이 함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헤어질땐 항상 다음엔 자기집에서 만나자며 자기집에 와서

뉴욕구경하라고하는데 언제쯤 Mrs.Woodcock 가 만든 맛있는 복숭아파이를

먹을수있을런지? 

 

2011. 1. 20. (목) 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