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메리앤이 한 달 사이로
천국으로 가신지
벌써 1년이나 지났다.
밥은 89세셨고,
메리앤은 87세였긴 하지만
밥은 연세에 비해 강건하셨다.
돌아가시기 2년 전에
무릎수술도 하셨는데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메리앤은 수술 후 회복을 못하셨다.
노부부의 삶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또 본의 아니게 두 분의 장례식에 참석지 못했기에
두분께 죄송하기만 하다.
마리앤은 오랫동안 데이비드의 피아노 선생님이셨고,
두 분은 우리 교회 오랜 교인이시기도 했다.
교회에선 서로 예배시간이 달라
어쩌다 한 번씩 지나가다 잠깐 인사를 하는 정도였지만,
댁에서 피아노를 가르쳐셨기에
매주 한 번씩 몇 년간을 뵈었다.
데이빗 레슨을 마치면
메리엔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고,
데이빗이 피아노 레슨을 받는 동안은
봡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운전해서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지만,
왕복 두번이니 40분이라 그곳에 있었다.
.
한 번씩 내가 너무 피곤할 땐
내 차 안에서 자고 싶은데,
밥이 차고 앞에 의자 두개 나란히 놓고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너무 피곤할 땐
낮잠을 자야 되겠다고 양해를 구할 때면
밥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짖곤하셨다.
밥은 약간 극우성향이 있는 데다
착한 마리앤에게 독재를 해
밥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그렇더라도 그의 장례식엔 꼭 참석했어야 했는데,
그의 장례식이 지나서야
교회 지인의 아들 졸업파티에서
그의 별세소식과
마리앤이 병원에 입원 중이란 소식을 들었다.
그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으면
메리엔도 돌아가시기전에 못뵐뻔했다.
마리앤이 병중이고 경황이 없었어
내게 연락할 생각을 못했는 듯.
좀 더 자주 안부 전화를 드렸어야 했는데...
우리 교회 페이스북에
교인들 장례식 같은 것은
공고를 좀 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밥의 별세 소식과
메리엔이 입원중이란 소식을듣고,
바로 병문안을 갔는데,
뼈만 남은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 상태에서 수술을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메리안은 그날 몇 시간 뒤에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가족이었으면 수술을
더 늦추도록 했을 텐데.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병실에 뼈만 남은 노인환자
혼자계셔서 마음이 아팠다.
간호사가 환자에게 직접 수술과
관련된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학교기말고사 기간이 아니었슴
내가 휴가라도 내었을텐데...
메리엔은 수술후 경과가 좋지 않아
호스피스로 옮겨셨다는 소식을
내가 한국가는 하루전날 들었다.
한국갈 준비며 집 정리로 10분 여유도 없었기에
마지막 인사를 못 드렸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메리엔이 돌아가셨고,
난 장례식에 참석치 못했다.
여리고 선했던 그녀의 마지막이
쓸쓸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들 부부는 아들만 둘인데,
큰 아들만 한번씩 만나고
다른 가족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명절에도 찾지 않고,
쓸쓸한 노후를 보내셨다.
몇년전 미네소타에서
플로리다로 이사간 작은아들은
척추 수술이 잘못되어 몸이 불편한 아내를
오랫동안 돌봐주다
운전중에 뇌출혈이 발생해
크게 다친데다 치료시간을 놓쳐
몇년동안 말도 잘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몇년만에 겨우 지팡이 도움을 받아서 천천히 거동을 한다고.
둘째가 미네소타에 살땐 노부부가
1년에 한두번씩 아들을 보러갔는데,
부인의 뜻에 따라 플로리다로 이사간이후엔
비행기를 못 타셔서
보고싶은 아들도 못 보셨다.
둘째 아들은 부모님댁과 형네와
가까운 우리지역에서 살며
그 좋은 회사 (엑손모빌) 에 다니다
부인의 뜻에따라 처가가 있는
미네소타로 이사가서는 두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 메리엔이 많이 안타까와했다.
집에 인터넷 연결하고,
삼성 겔럭시 $100 스마트폰만 있어도
보고 싶은 아들과 화상 통화가 가능했는데.
인터넷도 설치하지 않으셨고,
화상통화도 안되는 옛날 폴드폰으로
전화와 문자만 사용하셨다.
그리고 부부의 집과 병원에서
각각 15분 거리에 사는
큰 아들네는 2007년 금융위기
(서버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로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과 관계가 끊겼다.
큰 아들집이 은행에 차압당하고 쫒겨났을때
도와주지 않았다고.
밥은 엄청난 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땐 집값과 농지가 엄청 떨어지긴 했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아들이 유산으로
받게 될 땅이니
나였음 목수인 아들이 직접 지은 집인만큼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아마 메리엔도 아들을 도와주고 싶었을텐데
밥은 아들 부부가 돈 잘 벌 때
융자금을 미리 갚았어야 했다며
도와주지 않았다.
메리엔이 그 일로 가슴앓이를 많이 했을듯.
큰아들이 엄마가 수술하시는 날
유급이든 무급이든 휴가받아서
(부모님 간병시 유급병가도 가능하다)
아침부터 엄마 곁을 좀 지켜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밥이 장거리 여행과 크루즈를 싫어해서
메리엔은 그 흔한 크루즈 여행도 못 가봤고,
친정아버지께서 유언처럼
그랜드 캐년이 정말 좋더라며 꼭 가보라고 하셨다는데
결국 못 가보셨다.
내가 메리엔에게 병문안 갔을 때
이제 밥도 없으니
수술하시고 건강이 좋아지면
그랜드 캐년도 가시고,
크루즈 여행도 하시라고 했더니 크게 웃어셨다.
메리엔은 전 가족이 함께 있는
가족사진 한 장 갖고 싶어 하셨는데
끝내 전체 가족사진을 남기지 못하셨다.
그 많은 농지 한곳 팔아서
가족들 모두 크루즈 여행비 지불해 주었슴
가족끼리 기분좋은 공동의 추억과
멋진 가족사진도 남길수 있었는데.
큰아들네와 그 사건이 있기전까진
손주들 봄방학때마다 밥과 메리엔이 경비를 부담해
두 가족이 함께 위신콘신 델에서
몇일씩 휴가를 보내곤 하셨다.
밥은 큰 며느리가 괘심 해서
내게 유산을 둘째에게 다 넘겨야겠다 하셨어
내가 착한 큰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러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본인과 메리엔의 양로원비까지
계산해서 준비해 두셨는데,
두 분이 한 달 사이에 그렇게
갑자기 가셨다.
메리엔은 체격이 워낙 약한 데다
척추도 좋지 않고,
수술을 많이 해
메리엔이 천국에 먼저 가실 줄 알았는데
건강하셨던 밥이 먼저 가셨네.
사람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정말 그렇다.

밥과 마리앤
두 분처럼 연세 드신 분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심장마비와 뇌졸중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기도 하니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고,
한 번씩 안부 전하고,
하고 싶은 말은
그때그때 전해야겠다.
제 블친들과 블로그 독자님들에게도
감사 인사 전합니다.
굿바이 밥 & 메리엔
천국에서 영면하시길!
2026. 6. 2. 화요일 경란
'내가 만난 사람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존경하는 분의 조촐한 결혼 50주년 축하연 (0) | 2026.05.25 |
|---|---|
| 옛 직장상사 사모님과의 특별한 인연 (8) | 2026.05.17 |
| 아들집에 왔다 우리집을 방문한 동네 옛 남사친 - 세상이 좁네 (23) | 2026.04.08 |
| 독학으로 공부해 자격증따서 정규직되고 시급을 3배로 올린 자랑스러운 내친구 (20) | 2026.03.06 |
| 미래스타 앞집 가족을 초대해 함께하다 (11) | 2026.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