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 미국 와서 처음으로 만났던 한인이셨던
문혜 집사님께서
지난 목요일에 천국으로 가셔서
오늘 조문서비스에 참석했다.
집사님과의 우연한 첫 만남이 특별했고,
집사님을 통해 한국교회 속회모임에도 참석하고
또 속회 인도자님이시자 내 신앙과 인생의
롤 모델이신 Dr. 백 선생님을 만나
지금껏 많은 배움과 도움을 받고 있기에
집사님과의 만남과 인연은
미국에 와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이었기에
오늘 난생 처음으로
집사님과의 인연에 대해 조사를 했다.
집사님 살아생전에 조사 대신 집사님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적어서 집사님께 보여드렸더라면
집사님께서 더 좋아하셨을텐데...
이렇게 건강하셨던 분이셨는데,
1년 만에 반으로 줄어드셔서
마지막으로 작별인사하면서 가슴이 더 아팠다.
아래는 내가 한 조사
할 말이 더 많았는데,
길어지면 안 되니 줄여서 했는데도 4분 40분이었다.
Dr. 백 선생님이 3분쯤으로 줄이라고 해
또다시 줄여서 3분 30초로 수정했더니
개인적인 게 빠져 약간 좀 밋밋했다.
살면서 1분 10초 아무것도 아닌데...
권문혜 집사님을 보내며
지난 4월에 방문했을때
집사님께서 컨디션이 좋으셨기에
이렇게 빨리 가실줄을 몰랐습니다.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죄송해요.
집사님께서 사람들에게 29년전 저와의 특별했던 첫만남에 대해 말씀을 하시곤 하셨는데,
그날도 함께 간 저희 아들들에게 저와의 우연한 첫만남에 대해 말씀해 주셨고,
제 아들들에게 제 칭찬을 해 주셨죠. 감사해요.
저희 남편과 집사님께선 당시 신도가 3,000 여명이었던
Midwest Christian church에다니고 계셨는데,
그전까지 서로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다고요.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교회에 간날,
집사님께서 수많은 교인들중 저희 남편의 옆자리에 앉았었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집사님과의 이 만남은 주님께서 이땅에서 아는이 한명없는
저를 위해 주신 축복이라고.
그래서 집사님과의 인연을 더 소중히 생각했고, 감사했습니다.
그날 이후남편의 잦은 파견근무와 전근으로 뵐 기회가 많지 않았고,
또 남편이 한국에서 5년간 근무하게되어 어쩌다 한번씩 안부전화만 드리곤 했는데,
한국에서 근무마치고 운좋게 이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집사님과 재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님께선 그동안 미국교회에서 한국교회인
남부 시카고 한인 연합감리교회로 옮기셨고,
한국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사는 제가 외로울까봐
속회모임에 절 초대해 주셨죠.
집사님 덕분에 19년째 속회 모임에 참석하고 있으며
속회원들과 저희 속회를 이끌어주고 계신 인도자님이시자
제 신앙과 인생의 롤 모델이신 백권사님을 만나 지금껏 제 삶과
제 부족한 신앙심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으니
29년 전집사님과의 우연한 만남은
주님이 집사님을 통해 제게 준 최고의 축복이자 선물이었습니다.
(남편을 만난 것 다음으로 해야 했는데...)
집사님께선결혼 전에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하셨는데,
가정형편상 공부를 못한것에 대해 많이 아쉬워하셨죠.
특히 집사님께선 그림에 특별한 재능을 가져셨기에
우리 인생에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집사님께서 그때 미국에서 태어나셨거나
지금 한국에서 태어나셨더라면
집사님께선 틀림없이 훌륭한 화가가 되셨을겁니다.
문혜 집사님께서 그리고 싶어셨던 “성화”를 보고 싶었는데,
천국에서 완성하셔서 제가 천국가거든 보여주세요.
이 땅에서마지막날까지 지나와 쟌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으셨을 집사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나와 쟌은 지나와 쟌을 사랑하는
주님과 외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외사촌들이 있으니
천국에서 사랑하는 부모님과 죠오지와 주님 곁에서
영원한 소풍을 즐기시길.
감사했습니다. 문혜 집사님,
가끔씩 집사님 생각날 때 하늘을 볼 테니 웃어주시길.
다음에 천국에서 뵐께요. I miss you!
내가 뺀 것들
집사님은 제가 같은 경상도 출신에 (집사님은 안동),
국제 결혼했는데 잘 산다며 저를 많이 좋아해 주셨죠.
그런데 사실 저는 좋은 아내와 엄마도 못되면서
짠돌이에 노잼 남편에 불평불만도 많았기에
집사님이 보시는 것보단
결혼생활을 그렇게 썩 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결혼 전에 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미녀셨고, 서울에서 잘 나가는 미용사로 능력도 있어셨고,
말도 저보다 더 잘하고, 여장부셨는데,
집사님은 부군이신 죠오지가
제 남편보다 더 근검절약하는 분이셨고,
사교성도 없었고,
노잼이셨는데 집사님은 불평불만이 없어셨어요.
오히려 저보고 그렉이 진국이라면서
그렉과 죠오지는 근면성실하고, 아내 속썩이지 않고
우리가 노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고마운 남편들이라 하셨죠.
집사님 덕분에 남편에 대한 제 불평불만을 조금씩 누그러뜨리곤 했습니다.
저도 집사님처럼 좋은 사람들 서로 연결시켜주고,
외로운 사람들 챙기도록 할께요.
* 보고 읽어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연습을 많이 해서 보고 읽지 않았다.
말이 빠르고 발음도 좋지 않고, 말씨가 예쁘지 않아
조심하느라 더 쉽지 않았다.
연습하면서 몇번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집사님에 대한 제 마음을 담아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17년 전 문혜 집사님과 함께
Dr. 백 선생님 장남 결혼식 피로연에서
1969년 죠오지와의 결혼식
상처하고 혼자 사는 죠오지를 집사님 친척의 소개로 만나 결혼
죠오지는 생물학 박사로 결혼할 당시 대학 교수였고,
이후에 고등학교에서 바이오 교사로 은퇴했다.
집사님은 아버지를 4살 때 잃고
엄마가 유복자인 아들과 집사님을 혼자 키우셨기에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키가 커셨기에 중학교에서 배구선수로 활동했고,
고등학교에 너무 가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니 고등학교 대신 미용을 배워
어린 나이에 집안의 가장이 되었고, 결혼이 늦었다.
1969년 한국이 찌찔이도 못 살 때 미국은 천국이었기에
나이가 많은 상처 남이었던 죠오지가
박사였고, 또 겸손한 것이 마음이 들어서
죠오지와 결혼했다고.
그런데 죠오지는 많이 내성적이었는 데다
젊고 예쁜 아내와 함께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까 봐서
결혼 후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고.
첫딸 지나가 2살 때 책을 읽고,
천재성이 보였는데, 사회성이 떨어져
지금은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약간 자폐증이 있었는 것 같은데,
죠오지가 자기 딸이 그렇지않아고 부인해
치료를 받지 않았던 것이 더 나빠지게 되었는 듯.
그렇게 스위트했던 사랑스러운 아들은
친구들을 잘 못 만난 이후 집사님의 기도제목이 되었다.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셨는데...
본인 건강도 좋지 않은데 딸, 아들 걱정을 하셨을
집사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래는 집사님의 작품 중 일부
그림에 탁월한 탤런트가 있어졌다.
죠오지가 저축한 돈과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었는데,
미국 오셔서도 차고 뒤에 작은 미용실을 만들어서
단골손님들 위주로 70세가 넘도록 미용실을 하셨다.
미국은 가정집에서도 신고하고 허가받아서 미용실이 가능하다.
미용실 하시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려셨다.
난 집사님에게 미용대신 그림도 그리고,
여행을 다니시라고 했는데,
집사님은 미용을 돈 버는것보단
일하면서 단골손님들과 이야기 하는것이 좋아서 하신다고.
미용을 하지 않았어면 사회에서 잘 나가시는분이
자기와 이야기하려고 찾아오겠냐고.
맞는 말씀이긴 하다.
그런데 70세넘고 거동이 불편해지자
여행을 더 많이 다니지 못한것과
내가 한국살때 한국에 놀러오라고 했을때
그때 한국 가지 않았던것을 후회하셨다.
건강이 좋지 않으셨을 때 회복되면
꼭 예수님께서 거리의 사람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모습을 그리고 싶어 하셨다.
미용실 할 때 나도 몇 년간 집사님에게 머리를 잘랐는데,
돈을 받지 않으셨서 부담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니 집사님이 내가 만든 음식을 좋아했으니
돈을 받지 않으시니 내가 음식을 해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땐 나도 아이들 방과 후 그리고 주말엔 경기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하고, 내 공부하느라 시간 여유가 너무 없었다.
상대가 필요할 때
내 귀한 것도 기꺼이 내어 주어야 하는데...
내가 시간날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것을 아는데도,
이 나이가 되도록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해
사람도리를 못하곤 하니 내 스스로 작아지곤 한다.
문혜 집사님을 보내고,
또다시 후회를 하게 되니
앞으로는 이런 후회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문혜 집사님,
집사님의 속회로 절 초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절 좋아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집사님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집사님이 사랑하는 주님 품에서 영면하시길.
2024. 7. 22. 월요일 아침에
추신 : 좋은 사람은 다른 좋은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는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에게 크나큰 선물이 될수가있기에
나도 친구들 초대할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함께 초대하곤한다.
한국 사람들 중엔 그것을 불편해 하기도 하는데,
미국인들은 손님초대는 호스트의 선택이라고 인정하고,
초면인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니 좋다.
'내가 만난 사람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시간 기차타고 가서 만난 내 멘토이자 행복바이러스인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 (13) | 2024.07.31 |
---|---|
고 김민기 님 감사했습니다! (0) | 2024.07.24 |
깨끗이 청소된 집안을 보고 아들이 한말 (21) | 2024.06.29 |
L.A 근교 블친네에서 다시 만난 블로그 친구 셋 (0) | 2024.06.25 |
잠잘 시간도 없이 치열하게 사는 늦깍이 학생 제이크를 응원하며 (16) | 2024.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