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만난 사람들

21시간 기차타고 가서 만난 내 멘토이자 행복바이러스인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

앤드류 엄마 2024. 7. 31. 11:43

내가 미국으로 온 이후 만난 사람들 중 
언니라 부르는 유일한 사람 명희언니를
7년 만에 만났다. 
 
명희 언니 이후로 블로그를 통해 만난 분들은 
98세 할머니들도 Mrs. 가 아니라
자기 이름을 불러라고해 이름을 부럽다 보니 
미국물이 들어서 언니란 호칭이 어색해져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7년 만의 만남이라 많이 보고 싶었기에 
 21시간 기차 타고 가면서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기차 옆자리 Joie와 이야기하느라 즐거웠기도),
17년의 인연동안 3번째 만남이지만  
(두 번째 만남은 우리 집에서였지만 정말 잠깐이었다),
몇 달에 한 번씩 전화로 몇 시간씩 통화하면서
온갖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 하니
오랜만인 것 같지가 않았는데, 
재회했을 때 너무 반가워서
 우린 서로를 엄청 뜨겁게 안았다. 
 

 
밤늦게 도착했던 첫날부터 매일 밤 1시가 넘도록 3일 밤을 
저 자리에서 우린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었다.
 
명희 언니는 살림, 음식, 노래, 그림뿐만 아니라
정원도 잘 가꾸고,
 또 정말 현명하고, 지혜롭기에 
내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전화로 언니에게 
상담을 하기도 하는 내 멘토이다.   
 
그리고 글도 나보다 더 재미있게 잘 쓴다. 
(몇 년 동안 이메일을 주고받았는데
글을 엄청 잘 써서 내가 블로그 하라고 권했다) 
 팔공주 집 셋째 딸인데,
딸바보 아버지와 자식사랑이 대단했던 엄마 덕분에
 어린 시절 행복했고, 재미있었던 추억들이 많아서 
글들이 가족 드라마도 되고,
시트콤도 되게 따뜻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시작해
방문객이 많지 않았고, 
누군가가 카피해 본인 블로그에 계속 올려 중단했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으면. 
 
또한 성악을 전공하고 싶었을 만큼
목소리도 좋고, 말씨도 예쁜 데다
유머도 잘하고, 말도 엄청 재미있게 해
 한 번씩 전화통화할 때면
  간혹 서너 시간씩 통화할 때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안일도 하고, 운동하면서 통화한다),
 날 엄청 깔깔거리며 웃게 해 주는 
내 행복 바이러스이기도 하다.  
 
그래 17년 전 내게 이메일을 보내준 것에 늘 감사한다.  
 

집주인의 깔끔한 성품을 보여주는 집 현관 입구 

꽃과 화초를 사랑하는 집주인의 집 앞풍경 

매일 아침 당근주스를 만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주인장이신 이사장님 덕분에 처음으로 맛있는 당근쥬스를   
3일 동안 매일 아침 호강했다. 

바닷가로 나들이를 갔다.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되는 곳이라 그런지 흙탕물이었지만,
시원해서 좋았고, 교각을 설치해서 교각에선 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바다와 함께 해안가에 있는 멋진 집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닭다리를 미끼로 사용해 게를 잡았다 
허가증 사서 줄에 닭다리 묶은 것을 바다에 넣고선 5-10분 뒤에
줄을 올려서 확인을 했다. 
시간이 많았으면 게를 잡을 수 있었는데...
낚시는 한 사람이 낚싯대 2개 이상 못하게 하는데,
게는 제한이 없는지 줄을 몇 개씩이나 사용했다. 


 

멋진 요트와 보트들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음식도 전망도 좋았는데, 그늘에 앉느라 
바다 쪽 풍경이 나오지 않았다. 

렌트를 주고 있는 바닷가 근처에 있는 비치 하우스에서
집과 30분 거리였는데 바닷가라 그런지 기온이 섭씨 5도는 더 낮은 듯. 
서늘하기까지 했다. 밤엔 담요를 덮고 자야 할 듯. 
그렇게 큰집이 아닌데 바닷가라 그런지 엄청 비쌌다. 

원래는 잔디였는데 다 파내고 꽃을 심었다고. 

뉴저지 쪽 대서양 해변가에서 
2주 전에 L.A 갔다 태평양 해변을 걸었는데,
미대륙을 횡단하듯 반대편 대서양까지 갔으니 
 인터넷에 글 쓰고 블로그로 만난 친구들 덕분에 호강을 했다. 
 

집뒤마당에 설치한 골프 연습공간 
골프를 잘 치고 싶으면 연습이 필요하고,
또 저렇게 집에서도 연습가능했다. 
막내아들 로버트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어
시간 있을 때 골프 연습하러 집에 오곤 하는 듯.  

골프 구력 십 년도 훨씬 넘은 아버지를 코치해 주는
골프 구력 1년 차 막내아들
로버트는 골프 입문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레슨도 받고, 또 골프 공부를 많이 해
골프를 대충 배운 아버지보다 더 잘하고 많이 안다고. 
 
아들이 골프를 시작하고 나서
아버지와 대화도 많아지고,
함께 골프도 쳐
      부자지간 관계가 더 좋아졌다고.   
 
미국은 골프도 비싸지 않은데,
우리 집 남자들은 골프가 재미있지 않다고. 

 

 
명희 언니가 생선과 초밥을 좋아해서 
 이틀 점심을 초밥을 먹는 호사를 했다.

      딸 제니퍼와 막내 로버트가 부모님 집을 방문해
                     얼굴을 볼수 있었어 반가왔다.

             PA 인 딸 제니퍼가 새로 옮긴 병원에서
                    첫 급여를 받았다고 산 점심
 
 집에서 가까운 초밥집이 맛있으면서 가격이 착했다. 
내가 사는곳보다  집값이 3-4배는 비싼 L.A 와 뉴저지
      음식값이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 쪼끔 더 비싸고, 
  음식은 훨씬 더 좋아서 기분좋게 외식을 할수 있었다. 
 

집주인 생일 아침상 
몇 년째 놀러 오라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이번엔 목요일이 독립기념일이고, 금요일은 휴무라 4일 연휴였는 데다
언니 생일이 토요일이었기에 
살면서 직접 생일을 축하해 줄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
미역국 끓여서 생일 아침상을 차려줄 겸 해서 겸사겸사 갔는데,
실제론 난 미역국 끓이고, 쉬운 가자미만 굽고,
생일 주인공이 생일날 아침을 만드는 수고를 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나가서 근사한 브런치를 사줄 것을 미역국이 뭐라고. 
새우 내장 빼는 것도 깜빡하고선. 
내가 내장을 뺀 냉동새우를 구입해 먹다 보니 깜빡했다.  
 

생일 축하드려요!
덕분에 막내아들의 참한 약혼녀를 만나 반가왔는데
한국에서 3살에 이민왔다는 그녀는 한국말을 정말 잘했다.
육군 소령으로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근무 중인
큰아들 앤드류부부는 그전 주에 다녀갔다고.
 
 
생일선물로 브로드웨이 공연을 함께 보고, 
근사한 식사를 사 줄 생각에 선물을 준비해 가지 않았는데, 
연휴엔 맨해튼이 엄청 붐빈다고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일날 함께 할 기회가 또 언제 있을지 모르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왔어야 했는데
내 짧은 생각이 속상했다. 
 
좋은 사람은 하느님도 알아보고 귀인을 만나게 해주는지
언니는 80년대 초에 대학을 졸업하고
재미교포이자 당시 군인이었던 청년을
이웃의 소개로 만나 결혼해 미국으로 왔는데
70년대 말 고등학생때 이민을 왔던 남편의
고등학교 ESL 선생님이 학교 도사관장으로 근무중이어서
그분의 도움으로 한국이 못살아서 고등학교를
졸업못했다고 하얀거짓말을 해서
고등학교 4학년으로 입학해
1년간 고등학교 수업과 방과후 프로그램도 참여해
영어뿐만아니라 미국 고등학교 시스템도 알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당시엔 이민자가 많지 않아
학교에서 작은 버스를 집앞으로 보내주었고
ESL 수업도 2명이 받았다고.
영어배우기는 미국 고등학교 1년이 대학 4년보다 나을듯.
남편은 군인이라 주말부부를 하면서
언니는 학교마치고 반아이들과 함께
조립공장에 다녔다고.
80년대초 미국은 제조업이 활발해서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방과후 조립공장에 다녔다고.

김사장님은 제대후 흑인들 타운에서 가게를 하다
가게가 잘되지 않아 접고
지인의 소개로 비즈니스가 잘 되지 않았던
맨해튼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를 인수해
(그 당시엔 맨해튼이 비즈니스가 그렇게 잘되지 않아
렌트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고)
부부가 깨끗한 가게에서 신선한 재료로 맛있게 만드니
(언니는 또 엄청 상냥하고 친절하다),
손님들에게 당연히 인기가 있었고, 
그땐 지금처럼 크레디트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현금으로 계산하니 매일같이 돈을 
큰 쓰레기봉투에 담았다고.
그렇게 십몇년간 비즈니스를 하고,
돈을 많이 벌었는데,
미국에 온 이유가 돈 벌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녀들 잘 키우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였기에 
과감하게 가게를 정리하고,
언니는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키우고,
사장님만 생선도매업을 시작했다.
 
언니는 진주의 더 넓은 관사에서 자연과함께 살다
맨해튼 도심의 작은 가게에서 십 년 이상 치열하게 일한
후유증으로 번아웃이 되어
현재의 집으로 이사 온 뒤
열심히 꽃 심고, 풀 뽑는 것으로 치유했는데,
맨하탄에서 일한 시간만큼 시간이 걸리더라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도 하지만,
부자는 운도 따라 주어야 한다더니 
언니는 현재의 집과 렌트 중인 건물들을
  적절할 때 잘 구매해 재산을 많이 증식했다. 
나 보고도 앤드류 군대 한 뒤
앤드류 급여로 시카고에 콘도하나 사라고 했다. 
그땐 시카고 콘도가 비싸지 않을 땐데
그때 언니 조언을 들었음
    지금 앤드류가 몇 년 연봉을 벌었는데.ㅎㅎ
 
아이들도 현명하게 잘 키웠다.
학군이 좋은 새집으로 이사와 아이 셋에게 동네 친구들과 친하게 해 주려고
매일 같이 동네 아이들에게 집을 오픈해 간식도 주고 해
학교 마치고 자기 집에서 놀게 했다. 
그래 아이들이 지금껏 그 동네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부모는 자녀들의 성향을 확실하게 잘 알아서
현명하게 대처해 자녀들에게 
옳은 방향에 맞게 잘 성장시켜야 한다고.  
 
자녀들을 방목하듯 키우더라도
펜스를 넓게 치고, 좋은 먹이를 주면서
펜스가 부서진 것이 있는지 살피고,
펜스가 부서졌을 때 고치고 해서
아이들이 펜스를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아는 말이고, 그렇게 실천하려고 했는데,
나는 실패했고, 언니네는 성공했다.
 그 차이는 방법과 방향이 아니라 
아이들을 잘 다루지 못한 나와 남편의 말투와
 남편의 미국식 교육관과 경제적인 차이였는듯. 
 
 치과의사를 목표로
대학에서 바이오(생물)를 전공한 큰아들이
치과의사가 되지 않겠다고 하자
많이 수동적인 아들이라 명령을 따르는 조직생활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아들에게 주경찰과 군대를 권했고,
  육군 장교로 입대해 리드로 자신감도 찾고, 
 동기들 중 진급도 빠르게 잘 나가고 있다. 
큰아들이 두 동생들에게 부모님 말씀 다 맞다고 무조건
들어라고 했단다.ㅎㅎ
 
둘째 인 딸 제니프는 공부도 잘하고,
뭐든 잘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에너지 엄치는 아이였는데
학교에 백인들 뿐이라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고등학교 때 좋은 새 차를 사 주었다고.
제니프는 학교 밴드부 지휘를 했다.
제니퍼는 그 어려운 P.A가 되었는데도
P.A 일 하면서 컴퓨터 쪽 일도 함께 하고 싶다고
컴퓨터 공부도 또 했다. 
 
막내인 셋째 로버트는 대학에 가서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해 학점이 펑크 났는데,
저러다 대학 졸업 못할 것 같아서
돈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10개월간 힘든 훈련받고,
5-6년간 한 달에 며칠씩 훈련받은 예비군에 가면
   지금도 거금인 돈을 주겠다고 제의해
아들이 제의를 받았고,
훈련받고 달라서 3,4학년 때 공부를 힘들게 하고선
대학원까지 졸업해 컴퓨터 전문가가 되었다.
지금은 180도 달라져 엄청 알뜰해졌다고.
 
언니는 결혼과 남편은 내 인생의 교과서로
평생 공부해야 한다며
하나만 계속 깊이 공부하는 것이 
여러 가지 대충 하는 것보단 더 쉽다고.
내가 30년전에 들었어야 했는데...
 
인생은 낱말 찾기 퍼즐과 같다.
퍼즐 하나씩 찾을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그래서인지 언니는 낱말찾기 퍼즐도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슬픔을 당했을 때도
깊숙이 가장 바닥으로 갈아 앉고 
계속 호흡을 해서 
다시 떠올라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고,
화가 났을 때도
(말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화를 몽땅 꺼내 비워야 한다고.
 
언니는 배우자와의 이혼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도
이겨내고 혼자 설 때까지 몇년씩 함께 해주는 
  마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 
 
만나서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얼굴 보고 이야기만 해도 좋은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들
덕분에 나도 영혼의 휴식을 얻었다.
 
이 소중한 인연에 마음 깊숙이 감사하고,
우리의 인연이 오래오래 계속되길.
 
시댁으로 떠나야 해 급하게 마감합니다.
남편이 자랄때 사용했던 물건들 정리하러 시댁갔다
다음날은 시어머님 97세 생신이라
시어머님 계신 곳으로 갔다
일요일에 돌아옵니다.
 
2024. 8.  2. 금요일 아침 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