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만난 사람들

방한칸도 없이 결혼해 10명의 자녀들이 모두 대졸자인 27년생 그녀

앤드류 엄마 2023. 1. 9. 08:30

나는 나이 드신 분들이 살아오신

그분들의 인생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토요일인 어제 내 친구 Jean 의 어머니 Ann 여사 (95세) 와 

인터뷰를 통해 10 남매 (딸 넷, 아들 여섯)를 키우신 

 그녀의 95년 인생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앤 여사는 결혼했을때 월세와 신혼 살림 장만할

돈이 없었던지 

혼자 사시는 친정엄마 집에서 얼마간을 사셨다고. 

 

그녀는 방한칸 없이 결혼해서

남편 급여로    

 10남매를 작은집에서 키우면서도 

아이들 모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료인 공립학교 대신

사립인 카톨릭 학교를 보냈다. 

 

그리고 비록 자녀들의 학비를 지원해 주진 않았지만

10 남매가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이제 몇몇은 현직에서 은퇴를 했지만,

다들 전문분야에서 일을 했거나 하며 잘 살고있다고.

정말 축복받은 인생을 사셨다.

* 자녀들은 부모가 학비를 지불해 주진 않았지만

 부모님 집에서 다니게 해 주었기에 도움이 되었다고. 

 

10남매가 모두 대학을 졸업한것이 

그녀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다고. 

 

Ann 여사는 언니 둘과 오빠를 둔 막내로  

그녀의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처럼 철물점을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그녀가 10살때 천국으로 가셨다. 

 

앤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기에

앤의 엄마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면

자기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절대 먹지 않겠다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고.   

 앤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자

그녀의 엄마는 약속대로 초코렛을 끊었다고.

    1930년대에 누구나 초콜릿을 즐겼다니...

 

엄마가 혼자서 어떻게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가정을 꾸렸나 여쭈었더니 

연세가 많으셔서 기억을 못하셨다.

앤 아버지의 생명보험과 철물점 판 돈과 

철물점을 하셨던 

앤의 할아버지가 도와주셨는 듯.

* 미국은 1700s에 벌써 생명보험을 시작했다.

 

 앤의 어머니는 혼자 아이들을 키웠지만,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렵지 않았는지,

고등학생이 일할 곳이 많지 않았든지,

앤여사는 고등학교 때 여름방학 동안

고정적인 파트타임 일을 하지 않았고,

아이들 베이비 시트를 가끔씩 하고,

집안일을 조금 했다고.

 

그런데 앤 여사에게 엄마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여쭈었더니 

     주로 수프를 먹었으며, 

  일요일 저녁때 한 번씩 

      소고기로 만든 음식을 드셨다고.

 

앤은 초중학교는 집과 가까왔으나

고등학교는 쥴리엣에 있어 걸어 다닐 수 없는 거리였는데,

길 건너 이웃이 쥴리엣에 직장이 있어 

    그녀를 태워주었다고. 

미국도 한국도 예전엔 이웃들과 서로 돕고 살았는데.

  

앤 여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 4년제 대학인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DePaul에서

 1년간 비서 일을 배우고,

결혼할 때까지 몇 년간 비서로 일을 하셨다. 

그 당시엔 (1940년대 후반) 미국도

여자가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고.

한국의 1980년대와 같았네. 

 

앤 여사는 어릴 때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고,

자전거 타고, 가끔씩 롤러스케이트를 탔다고해 놀랬다. 

그 시절에 롤라 스케이트가 일반화 되었나 

의아해서 구글에서 찾아보니 

미국에선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롤러스케이트가 인기가 아주 많았다고.

 

시카고에 기차 타고 다닐 때

  친구가 뜨개질을 가르쳐줘

     뜨게질을 하며 다녔다고. 

 

     남편과 어떻게 만났고,

   결혼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했는데,

    앤 여사가 기억력이 흐려져 

     우리는 만나서 결혼하게 되어 있었다고.ㅎㅎ

진이 엄마가 아버지를 친구들 모임에 가서 

친구의 소개로 만난 것 같다고. 

   앤의 남편은 대기업에서 은퇴할때까지 회계일을 하셨다. 

 

작은집에서 아이들 10명을 키웠는데,

어느 이웃집 아이가 자기 집이 작다고 

엄마에게 불평을 했는지

이웃에 사는 아이 엄마가 아들과 함께

자기집 앞으로 와서는

이 작은집에서 아이들이 10명이나

  산다고 말하더라고.

작은집이었지만, 좁다고 생각하지 않고,

뛰어놀며 잘 지냈는데, 

충격을 받았던지 50년도 더 지난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듯. 

 

아이들이 많으니 

매일 자기 집 뒤뜰에서

자기 아이들끼리 미식축구와 야구를 하곤 했다고.

 

말썽 피운 아인 없었는지 궁금했는데,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지만, 

다 잘 자랐고, 좋은 시절이었다고.

다 잊어 버려신건지?ㅎㅎ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다 키우셨냐고 했더니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돌보고,

집도 치우고 했다고. 

 

미국에서 운전이 필수인데, 

그녀는 평생 운전을 하지 않으셨다고...

 

집 근처에 버스가 다녀서 버스를 탔고,

 남편과 자녀들이 운전을 해 주었다. 

 

그녀는 아이 10명을

모유가 아닌 아기 분유로 다 키웠다고 해 깜짝 놀랐다.  

아기 분유가 얼마나 비싼데...

알고 보니 그 당시 분유회사가 의사들에게 로비를 했는지

분유가 아기에게 좋다고 분유를 권했고, 

당시엔 비싸지 않았는 듯. 

그녀의 친구들 중 딱 1명 (부모가 이탈리안)만

모유로 아일 키웠다고.  

 

모유로 아일 키웠으면 수유기간 동안 

자동으로 피임이 되어 

아이들 터울도 좀 더 길었을 텐데,

아기분유로 키워서 

   어떤 아인 터울이 짧았다. 

모유 수유했더라면 아일 10명까지

  낳지 않았을 수도. 

 

난 아들 둘 키우면서도 너무 힘들었는데, 

그녀는 10명이나 되는 아일 키웠지만, 

부부가 낙천적이었는지

아이들이 모두 잘 자라 

모두 대학을 마쳐 다들 잘 살고 있고,

자식들끼리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니 

후회도 없고 (잊어버려셨다고.ㅎㅎ)

   베스트 라이프를 사셨다며 자랑스러워 하셨다.

 

자녀들을 잘 키우신 건지?

자녀들이 잘 자랐는 건지?

둘 다겠지. 

 

첫째가 변호사인데,

큰딸답게 아이들이 자랄 때 

   맏이 역할을 잘했다고. 

 

부부간에만 잘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자녀 간에도 서로 맞아야 하는데,

  앤 여사는 남편과 또 자녀들과 잘 맞았는 듯. 

 

당신 자녀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Be Kind People" 

"사람들에게 친철하라"고 하셨다. 

 

앤 여사는 비록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지만,

언니들과 오빠가 그녀를 잘 보살펴 주었고, 

남편과도 27년 전에 사별했지만, 

남편이 좋은 직장에서 은퇴를 하셨기에 

적지 않은 남편 연금을 받고 계시고,  

또한 자녀들이 잘 자라 

남편 사후 그녀를 잘 보살펴 주고 있고,

평생을 순탄하게 사셨는듯해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나도 마음이 편안했다.

정말 축복받은 인생을 사셨다.  

 

10년 전에 인터뷰를 했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기억이 많이 흐려지신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연세가 드시면 예전에 살면서 힘들었고, 후회된 순간이나 

속상했던 기억들, 화가 났던 일들을 잊어버리고,

두루뭉실 좋은것들만 기억하게 되는건지?

 

10년 뒤 진의 인터뷰가 궁금해진다. 

 

둘째인 진의 집으로 4년 전에 오셨다. 

남편인 Don과 함께

손주들과 함께 한 Ann 여사

어린 시절의 Ann

그 시절에도 (1930년?) 저렇게 스냅사진을 찍었다니...

 

고등학교 졸업반 때

초중고를 함께 다녔던 평생 친구들 - 친구 별장에서

부자인 친구가 해마다 자신의 별장으로 친구를 초대했다고. 

또 한 친구도 남편이 엄청 큰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다.  

 

일곱 명의 친구가 단체로 해마다 몇 차례 씩 만났고,

70대 후반부턴 13년을 매주 금요일마다 

   레스토랑에서 만나 커피타임을 가졌는데, 

이젠 친구가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Ann의 부모님 

 

앤의 아버지이자 진의 외할아버지는 

현재 진이 살고 있는 고장에서 

의용소방서로 활동했다

사진 중앙 맨 위의 핸섬 맨 (진의 아버지)

1907년 미누카의 의용소방서 기념사진

진이 엄마를 위해 엄마가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을 모아서

사진책을 만들어 주었다.

신부 들러리로 참석한 친구 결혼식 

 

그녀는 남편과 간단하게 결혼을 했다고. 

결혼사진이 없었다. 

Family Reunion (2022년) 

* 17명은 사정이 있어 참석지 못했다고.

보통은 Family Reunion 할 때 사촌들과 그들 자녀들 가족들도 참석하는데,

진 가족들 경우는 진의 형제자매들과 그들 직계 가족들만 참석했다.

* 진의 부모님 양쪽이 Irish 라 Irish (아일랜드) 상징인 초록색 티로 통일

* Irish 들은 한국사람들과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

 남자들은 술 좋아하고, 약간 가부장적 친구들에게 진심이다.

엄마와 가족이 먼저라고. . 

     

Ann 여사와 그녀의 10 남매들과 함께

내 목소리가 좋지 않아 질문지를 진에게 주고 인터뷰를 부탁했다.

(진의 형제자매들이 다 모였을 때 볼 수 있도록 촬영했던 비디오를 진에게도 줄 생각이었기에)

난 비디오와 사진 촬영 

진은 기자일을 하고 있어 인터뷰를 잘했고, 목소리도 좋았다.  

 

진이 자기 가족들 이야기가 내 블로그에 올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주어서 고맙다고. 

내가 감사한데.

 앤 여사가 와 주어서 고맙다며 다음에 또 오라고 하셨다.  

 

그녀는 뜨개질 같은 것보단 사람들 만나 이야기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셨다고. 

나랑 같은 과 시니 

그녀가 10년만 더 젊 어셨더라면 나랑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여지껏처럼 사시는 동안 평온하게 잘 지내셨으면. 

 

이 지면을 빌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앤 여사와 친구 Jean 에게 감사드린다. 

 

2023.  1. 8. (일) 경란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고, 좋으셨으면
아래 왼쪽에 위치한 하트 클릭 부탁드립니다.

 

추신 :  개인 정보 노출을 방지하고자 

자세한 년도 같은것은 일부러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