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나와 가족들

난 그때 빨리 오십이 되고 싶었다

앤드류 엄마 2010. 2. 15. 08:09

앤드류가 태어나기전까진 매일이  휴가 같았다.  아이도 없고, 내가 직장을 다니지않으니,

그렉은 회사 출장업무를 도맡아 했기에,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호텔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러니 영어공부하고, 수영하고, 헬스하고, 케일블티브로 영화보고, 책읽고,

편지쓰고, 일기쓰는것이 하루 일과였다.   신혼집이었지만, 내가 집안가재도구를 하나도

구입하지 않았으니 침대부터 가재도구는 전부 그렉이 결혼전 사용하던 것이었고, 아파트도

집에 있는 시간이 적은 사유로 시골의 저렴한 아파트를 렌트했기에 별로 신혼집같지도 않으니

호텔생활이 훨씬 좋기도 했다(지금은 아무리좋은 호텔이라 내집이 훨씬 편하다).  출장이

없는 날도 아침으로 계란후라이 두개 해주고나면  남편이 4시에 퇴근할때까지 그렇게 지내다

함께 조깅하고 저녁만들었기에 반찬걱정도하지 않았고, 며느리로서 해야할 의무같은것이

없는데다 손님도 없으니 왠종일 마음내키는대로 사니 세상같았다.

매일같이 엄청 바쁜 나를 보고 직장생활할때 김부장 님께서 다음에 결혼하면 할일이 없었어 

심심해서 어쩔래 ? 하셨는데 새벽같이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니 너무 좋았다.

 

그런데 앤드류가 태어나고 부턴 이전까지 룰라라 했던 시간들은 옛날이여 되었다. 

남편은 때마쳐 일이 바빠져 퇴근이 늦었고 (앤드류태어나고 여지껏 내가 남편이 필요할땐

바쁘다.  그래 부부인연이 아닌것같다고 남편에게 농담처럼 시비를 걸곤한다), 시어머니는

오셨다 시아버지가 병환중이라 만하루 계시다 다음날 아이 목욕시켜주시고 가셨다.   

탯줄떨어질때 까지 목욕시키는것이 일과중 최대의 난제였고,  황달증세가 보이는데 병원도

안가고 형광등아래 아기를 뉘어 걱정(그런데  괜찬아 졌다), 눈꼽이 너무 많이 끼어 걱정,

너무 쬐그만해  혹시나 잘못될까봐 노심초사였다.   그리고 2주째부턴 밤낮없이 얼찌나 보채고

우는지, 계속 젖먹이고, 안고있었더니 가슴도 아프고 , 팔도아프고, 잠도 못자니 짜증도 났다. 

그래 아침이면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나하는것이  걱정이었다.    

그때 시간이 빨리가 어서 50살이 되고 싶었다. 

 

그전까지는 남편과 다툴일도 없었는데, 녀석이 태어나고부터는 육아에 대한 방법이 서로 달라

의견충돌도 잦았다.  녀석이 태어나자 남편은 백과사전같은 육아책을 구입해선  울어서

젖주려면 아기들은 가끔씩 이유없이 울기도 한다면서 아직 수유할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한소리하고(그런데 정말 책내용대로 수유시간을 지키면  아기가 젖을 충분히 먹기에 젖몸살이

나지않았다), 안아주는것도 그렇게 수시로 안아주면 아기 버릇 나빠진다며  울어도 그냥두란다. 

그래 한국은 엄마와함께 아기가 같이자고, 수시로 업어주고 안아주어도 버릇이 안나빠진다고

했더니, 날생각하고 아이를 생각해서 말이란다.  한달도 안된 아기 잠자리를 다른방으로 옮겨

아기가 걱정이 되어 아기방에서 자려고 하면 안된단다.  밤에 울어도 울때마다 가면

버릇나빠진다며 그냥 두라니 무슨 아버지란 사람이 저렇게 어린 아이한테 매정하나 싶어

남편이 미워졌다.  아이가 너무 울어 걱정이 되어 내가 죽을 지경이라,  저렇게 울다 죽겠다며

화를 내어도 죽지않으니 걱정말고, 나중에 목청이 터일거란다.  앤드류 녀석이 목소리가

큰것이 아마 그때 많이 울어서 그런것같다.  수시로 울어되니 너무 힘들어 남편에게 다시는

아기를 낳지않겠다고 선포를 했다.  어느날 한국 여성지에 앤드류와 똑같은 증상에 대한

대처법이 나왔는데, 그때서야 녀석이 유아복통인줄알았다.   녀석한테 어찌나 미안하든지,

무려 4개월동안 녀석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런줄도 모르고 너무 울어서 가끔씩 짜증을

내었으니  그때 인터넷이 있었어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성지의방법대로 했더니 녀석이 방긋방긋웃기 시작했고  밤에 울지않고  몇시간동안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육아책에 의하면 7개월부턴 아기가 밤새 한번도 수유하지 말고 자야했다. 

그러니 아기가 깨어나 울어도 바로 아기한테가지 말고 울다가 잠이 들면 혹시 아기가 열이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다.   남편은 당연히 녀석이 울어도 내가 아기에게 못가게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책에서 설명했듯 첫날 30, 이튿날 20 이렇게 우는시간이 짧아지더니

밤새 한번도 깨지 않고 잤다.  그러니 다음부턴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하게되었고,

남편과의의견충돌도 줄어들었다

아이둘 키우면서 데이빗 7개월 지난후부턴 아이들때문에 밤에 일어난 적이 거의 없다.

 

녀석이 더이상 울지않고 방긋방긋 웃으니 아이였지만  얼마나 귀여운지, 그전에 고생한것

까맣게 잊게되었다.  남편이 딸하나는 있어야 한다기에 둘째를 가졌다.  미국은 임신기간

동안 초음파검사를 두번만한다.  한번은 체외임신여부를 알기위해 한번하고, 기형유무를

확인하기위해 한번 하는데, 의사가 딸같다고 출산전날까지 글로리아라는 이름만

준비했는데, 병원가서 혹시나 싶어 데이빗이란 이름을 준비했다.  엄마한테 아들이라고

전했더니, 엄마한텐 딸이 있어야 한다며 한명 낳으란다.  다음에 아들이면 어쩔려고,

아들셋은 정말 자신이 없었다.

 

데이빗은 앤드류와 달리 얼마나 순한지 먹고자고 먹고자고 울지도 않았다.(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순한것이 별로 좋은 것이 아닌것같다) 그런데 문제는 앤드류였다.

걷기시작하고부턴 눈만뜨면 신부터 찾아신고는 밖에 나가잔다.   아이낳은지 3일밖에

되지않았는데, 겨울이라 밖에 잠깐이라도 나갈수가 없었다.   산모가 찬바람을 쐬면 좋지 않다는

말을 얼핏 들은것 같기에.   시어머니는 이번에도 시아버지때문에 저녁늦게 오셔선 하루

계시다 다음날 돌아가셨고, 그렉은 이번에도 일이 바빴다. 

 

첫아기땐 녀석이 매일 칭얼거려도 혼자뿐이니 녀석이 자면 나도 자고, 아기만 보면 되었는데,

둘째는 큰아이때문에 힘들었다.  아기가 자는동안 큰아이를 돌봐야하고,  가만히 있질 않으니 

쫓아다닐수도 없고, 또다시 아침이면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나하는것이  걱정이었다  

그래  난 빨리 50십이 되었으면 했다.  혼자서는 외출도 못했고, 외식도 못했다.

그때 친구 캐시가  앤드류를 맡아주곤했기에 그래도 견딜수있었던것 같다. 

그때 차가 없었는데,  친구린다는 내가 외출도 자주 못하고 집에서 꼼짝 없이 지내는 것이

차가 없기때문이라 생각했는지, 그렉한테 차사달라고 하란다. 

그래  차가 있어도 어린아이둘 데리고 어디 엄두가나지 않는데다 마땅히 갈곳도 없다고 했다. 

그때 가고싶어도 이웃친구네 외엔 갈곳이 없었기에 많이도 내신세가 처량했다. 

친구좋아하는 내가 남편외 주위에 아는사람 하나 없고, 말도 통하지 않은 남의땅에서 혼자서

말못하는 어린두아이키우며 감옥살이 같은 생활을 견딜수 있었던 것은 친구린다에게도 말했지만, 

어려움이 몇년만 지나면 괜찮아 질것을 알고있었고 밝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미래에 희망이 있으면 참고 견딜수 있기에

인간은 항상 희망을 가져야 할것 같다.

 

2010.  2. 14  경란

 

P.S 쉰까지 가지 않고, 마흔이 되었을때 내 삶의 여유가 생겼기에 더이상 오십대를 꿈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