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나와 가족들

강요된 빈곤 그래도 행복했던 고교시절

앤드류 엄마 2010. 2. 9. 15:19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할때 모조건 우리집을 떠나고 싶었는데, 마산 연합은 꿈도못꾸니,

한일합섬에서 운영하는 한일실업학교(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야간에 수업받는학교) 라도

가고싶었다.  그래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여자는 집을 떠나면 안된단다.  대학을 못가니 

문과에 미련이 없었는데다 여상가면 졸업후 취직할수있고 영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 솔깃했는데다, 친구 정화가 상과로 간다기에 나도 상과를 지망했다.

 

주산시간,  읍에사는 아이들은 겨울방학부터 벌써 주산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6급을 땄다는데,

할아버지께 주산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당신이 사용하시던 주산알 5개짜리 주산을 주셨다. 

그전까지 주산구경도 못했으니 주산이면 되는줄 알았는데, 주산알 4개짜리로 바뀐지

오래되었다며 선생님이 엄청 황당해하셨다.  그래도 학원한번 다니지 않고 졸업할때  

먼저시작한 친구들보다 취업에 유리한 2급을 먼저 취득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 타자 선생님이셨는데, 여름방학 숙제가 타자 50장인가

쳐오기 였는데, 2학기 점수에  방학숙제 50%, 시험점수 50% 반영한다고 했다.  그런데 숙제를

하려면 타자학원을 가든지, 타자를 대여해야 하는데, 둘다 허락 해주지 않아 숙제를 못해갔다. 

담임선생님이 차마 나한테 주지못하시겠는지   주셨다. 

취업할때 학생생활기록부를 참조하기때문에 선생님이 봐주지 않았으면 큰일날뻔했다.

취업을 잘하려면 부기 2급을 취득해야 하는데, 선생님이 수시로 바뀌어서 진도가 나가지않아

3학년내내 마음을 졸였다.   학원을 다니지 못하니, 학교에서 배운것으로 시험을 쳐야하는데,

배우지 않은것을 혼자 공부하기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졸업가까이되어서야 2급을 취득했다.

자격증 취득하려면 학원을가야하는데 3년내내 학원한번 갔고, 12년동안 공부하면서  

전과나 참고서, 문제집하나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가정시간엔 병풍만들기 수예를 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준비물을 구입해 가야하는데, 돈이 없다고해, 가정시간내내 복도에서 나가 있었다. 

나와 함께 벌을 아이들중엔 집에서 돈받아 딴곳에 사용한 아이들도 있기에,  지나가시는

선생님들 마다 너가 여기에 있냐며 한마디씩 하셨다.  수업시간에 못한 수예들을 여름방학

숙제로 내주었는데, 역시 성적에 반영했기에, 어쩔수없이 친구 기숙이 것을 빌려서 제출했다. 

아마 선생님도 아셨을텐데 모른척 넘어가 주셨다.  그때이후 선생님 뵐때 마다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길 건너사는 친구는 행정구역이 달라 초.중교를 다른학교에 다녔기에, 고등학교때서야

알게되었다.  어느날 근처에서 유일한 양옥집인 그 친구집에 놀러갔더니, 집에 전축도 있고

레코드판도 엄청 많았는데, 그 친구가 비틀즈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난 그때까지 비틀즈가

누군지도 몰랐으니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교감선생님이자 장로님이신 친구 아버지께서

나한테 교회가면 일요일날 일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냐며 교회에 오라고 했다. 

그래 일요일날 일하지 않고 교회갔다간 할아버지한테 집에서 쫒겨난다고 말씀드렸더니

많이 놀라시는것 같았다.  일요일날 일하지 않고 교회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친구는 우리동네근방에서 최초의 여대생이 되었고, 비틀즈를 좋아하더니 영문학박사가

되어 지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있다.    그전까지 내 친구들은 대부분 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기에 처지들이 비슷해 누굴 부러워한적이 없었는데, 그날 난 그 친구가 많이

부러웠다

 

나이들어서 우리집보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는데도  대학간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니,

친구들은 학교다닐때 엄마가 학교 준비물 돈주지 않으면  이웃집에 빌려서라도

줄때까지 울면서 학교를 가지 않았단다.  없다고 하면 그냥 시무룩하니 학교에 가서 몸으로

때웠는데,  준비물보다 지각할까봐 걱정이었겠지만.

졸업후 한참뒤 친구들과 지난 이야기했을때, 친구들이 너희집 부자였는데, 그렇게 어렵게

학교에 다녔나며 깜짝 놀랬다.

남들은 집도 크고, .밭도 많으니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할아버지만 부자였고 나머지 가족들은

행랑아범가족들처럼 궁핍했고, 논.밭이 많아 남들보다 일만 많이했다.

분기가 끝날때쯤이면 항상 그때까지 수업료 내지 못한 학생들의 이름이 호명되는데,

난 매 분기 단골로 호명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용돈을 받지 못했기에, 일부는 부모님에게 피타고라스정리책

사야한다며 속여서 돈을 받아오곤 했다.  용돈도 없었고, 돈이 없는줄 알기에 부모님을

속일수없어,  학교앞 매점에 갈수가 없었다.  나도 친구들하고 매점가서 고구마튀김 사먹고

싶다면서 용돈 달라고 하면 부모님은 눈감고 다니란다.  학교앞에 매점이 얼마나 많은데,

눈감고 다니다간 전봇대에 부딛힌다며  화가나서 말댓구를 하곤했다.   

졸업해서 내가 돈벌면 매점에 와서 고구마튀김 실컷 사먹어야지 했는데, 한번도 못가본것같다.

 

비록 준비물을 사지 못해 수업시간에 삥땅친 아이들과 함께 벌을 섰지만, 당시 내가 크게

챙피해 했거나,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던것같다.  

그리고 주머니에 돈이 없어 친구들과 함께 매점이나 빵집에 못갔지만, 처음으로 존경한

선생님을 만났고, 좋아했던 선생님과 가까이 지냈고, (예전엔 마음으로만 좋아했기에 선생님과

가까운적이 없었다)  주류가 되었고, 친구들과의 우정이있었기에  그래도 학창시절중 고등학교때가

가장 행복했던것 같다. 

 

대학은 못갔지만, 할아버지 밑에서 우리집 여자중  최초로 고등학교에 역사적인

인물이되었다 

 

2010.  2.  8.  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