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지도중 시카코 바로 아래 노란점은 우리가 사는 곳이고
미시건 북쪽에 있는 빨간점이 시어머니께서 사시고 계신 Engadine 이다.
Engadine 은 인구 500 명도 되지 않는 시골중의 시골로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로서
주인이 세상을 떠나가나 집을 떠나 폐허가 된 집들이 한집씩 늘어나고 있다.
우리집에서 시댁까지 445 마일 (712키로) 거리로 반이상 국도를 이용해야해 10 시간정도 소요되는데다
겨울이 빠르고, 눈이 많이 내려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추수감사절에도 눈이 많이 올수있기에
시어머님께서 시누네로 오시기에 여름방학때나 방문하게되는데
지난 여름엔 장기간 가족여행 하느라 방문하지 못했다.
몇달후면 85세가 되시는데도 5시간 30분거리에 사는 딸집엔 가끔씩 오시기에
1년에 몇번씩 시어머님을 뵙는다.
시댁에 가면 시어머님과 함께 교회에가서 예배도 보고 교회분들에게 인사도 드리는데,
이번엔 토요일마다 중요한 일이있어 주중에 갔다 금요일까지 돌아와야해 아쉬웠는데,
마침 수요일날 저녁에 교회에서 지역민들을 위한 무료 저녁식사를 제공해 교회분들을 뵐수있었다.
일정이 짧은데다 가는 길에 앤드류 대학 진학을 위해 미시건 텍 (분홍색 도로와 까만점)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시누네 (연두색) 근처에 볼일이 있어 시누네 들렀다가 오느라
2년만에 간 시댁에서 몇일 머무러지도 못했다.
한적한 시골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면 눈도 마음도 평화롭다
시댁 근처에 도착했을때 밤 9시가 넘었는데도 그리 어둡지 않았고,
돌아오는날 혹시라도 비가 내릴수가 있기에 시아버지와 곁에 나란히 잠든
태어난지 16시간만에 하늘나라로 간 남편의 형님 묘지를 방문했다.
남편은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기에 (가족중 그분과 사이가좋은 사람이 없다)
시댁 가는길가에 자신의 아버지 묘지가 있었지만 방문하지 않았는데,
돌아가신 분이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잠깐 방문하자고 했더니 이후 시댁갈때마다 방문한다.
시어머니 집과 풍경이 비슷한 시어머니의 가장 가까운 이웃집
시댁과 시댁 소유의 들판 (젖소먹이는 분에게 임대해 풀이 자라고있다)
이웃도 없이 외딴집같은 시댁
동네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울 부모님과 고모님들이 시댁에 오셨선
이웃도 없이 무섭고 외로와서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이셨는데
평생을 이렇게 살아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으신것 같다.
거실 벽에 붙은 시어머니와 가족 사진들
가장 멋있었을때의 시아버지 모습 (맨 위쪽 군인)
시어머님의 친정 부모님 결혼 50주년때의 모습과 그때 모인 시어머님의 형제자매들
시어머님은 대공황을 겪어셔서 그런지 버리질 않으시는데다
연로하시기 전까지 바깥일에 치여 집안 살림할 시간이 없었던것이
일을 그만두시고도 살림에 흥미를 잃었는지 몇년전 배달된 그대로 비닐도 벗기지 않은체
몇묶음씩 쌓여있는 잡지책들을 비롯 10년도 더된 누렇게 색바랜 잡지책들등 잡동사니들이
집안곳곳을 점령해 큰집에 혼자사시는데도 공간이 없고 정신이 없다.
시누나 내가 함부로 버렸다간 큰일 나니까 절대 그대로 두어야한다.
할머니의 밭을 갈아주고 있는 앤드류
시댁은 겨울이 길고 춥지만 여름이 시원하기에 더울때 피서오면 딱인데
일정이 맞지않아 우리집이 시원할때 시댁에 오게되어 아쉬웠는데,
시어머님이 농사를 시작해야 할때 우리가 방문해 텃밭을 갈아주었으니 때맞추어 잘 온것 같다.
집주변과 창고주변에 자란 풀을 잘라주고 있는 남편
다음날 앤드류가 한번 더 밭을 갈고, 남편은 골을 타서 데이빗과 함께 감자를 심어주었다.
우리 아버진 괭이로 골을 한골씩 만들었는데, 저렇게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한번에 3골씩 만드니
미국 농부들은 농사도 과학적으로 짓는것 같다.
데이빗 혼자 일하지 않고 놀았는데, 감자 심을때 한건했다.
할머니집 잔뒤도 깍아주고
할머니도 도와드리고, 아빠한데 수고비로 20불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미국은 크리스마스와 생일외엔 손자들이 아무리 오랫만에 왔더라도 돈주고 하지 않는다.
자식들도 부모한테 어머니날과 생신, 크리스마스외엔 선물이나 돈을 주지 않지만
우리집을 방문하시거나 내가 방문했을때 기름값이나 친구분들과 식사하시라고 약간의 돈을 드린다.
고장나 방치되고있는 잔듸깎는 기계를 고치보려고 도전했는데 부품이 없어 고치지 못했다.
아들이 이틀에 걸쳐 컴퓨터 엎데이트를 하고, 바이러스를 제거해 주었으니
이제 인터넷을 하실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할머니집에서만 가능한 즐거움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곳에 사격장이 있지만 그곳엔 장총만 가능하다고.
데이빗은 겁이나 사양했고, 난 사진찍다 권총소리가 너무 커 귀가 먹을뻔했다.
한달에 한번 무료 저녁 제공하는 community meal 봉사자들
중간에 계신 86세 (한국나이 87세) 신 시이모님이 총책임자셨다.
주중에 시댁에가 교회분들에게 인사를 못드리게 되는줄 알고 아쉬웠는데,
때마침 한달에 한번씩 수요일 저녁에 신자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을 초대해 저녁을 제공하는
Community Meal 날이라 교회분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일도 도와드릴수 있었어 좋았다.
계획상 올 여름에 시댁에 가면 교회분들에게 예배마치고 점심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기에
그날 저녁을 우리가 대접할테니, 다시 한번 더 저녁식사를 하시라고 했는데 그럴순없다고해 기부금으로 대신했다.
교회에 오시는분들도 그렇고 지역민들중 70세 중반은 젊은축에 속했다.
연로하신분들은 교회에서 무료급식을 해도 운전해 오시기도 어렵기에
공동체 생활을 하며 좋으련만 그날 도와드리면서 보니
젊은 사람들이 없으니 한달에 한번 식사제공하는것도 큰일인것 같았다.
정부의 사회보장 프로그램들도 많은데 모르시니 혜택을 못 받는것 같다.
72세인 케롤(내 오른편)은 교회에서 젊은 축에 속한다.
10년전에 교회 식당을 증축했는데, 영업용 대형 오븐에 냉장고등을 갖추었고,
그날 103명 분 저녁식사를 제공했는데 배식 도와주고, 나중에 식기세척을 맡았는데,
영업용 식기세척기가 있어 한결 편리했다.
저 음식에 샐러드와 디저트 (케익과 아이스크림) 가 함께 제공되었다.
또다른 교회에서 마지막주 수요일에 저녁을 제공해 한달에 두번 무료급식을 받을수 있다고.
시골분들이라 저녁 식사시간이 빠른데다
연세드신분들중 하루 2끼만 드시는 분이 많아 배식을 4시부터 6시 30분까지 했다.
남편도 저녁먹으면서 지역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떠나던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한 식사 (점심) - 85세 시어머님이 만드신 치킨오븐구이
시댁에서 2박 3일 묶었지만 첫날 밤늦게 도착해 길에서 저녁을 해결했고,
시어머니는 몇달전에 심장에 이상이 생겨 체중을 줄이셔야 해 아침은 시리얼,
다음날 점심은 요쿠르트, 저녁은 교회에서 드셨다.
아이들과 나도 아침은 시리얼, 점심은 과일과 컵라면으로 대신했고, 남편은 통조림스프를 먹었다.
한국보다 더 넓고 태평양 만큼 깊은 미시건 호수
넓어면 바다인줄 아시는 울 부모님과 고모님들이 미국에 왔을때
미시건 호수를 보시곤 저 넓은것이 어떻게 호수냐고 반문하셨는데,
충주호에 갔을때 미국인인 남편의 상관은 저게 무슨 호수냐 연못이지 라고 놀렸다.
미시건 주를 연결하는 Mackinac 다리에서 (금문교와 흡사한데 공사비는 금문교보다 더 들었다고)
* 우리집 가는길에 있는 다리가 아니라 시누네를 가기위해 오랫만에 저 다리를 통과하게 되었다.
체중을 줄이시느라 평소처럼 드시지 않으신데다 심장이 좋지 않아 걱정이 되셔서 그런지
시어머님은 지난 크리스 마스때 뵐때보다 얼굴이 더 좋지 않으셨다.
사시는 날까지 건강하게 사셔야 할텐데...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남편이 시어머님 컴퓨터도 엎데이트 해 드리고,
텃밭도 갈아드리고, 감자도 심고, 잔듸도 깍아드려 위안이 되었고,
커뮤니티 무료급식 덕분에 교회분들에게도 인사도 드릴수 있었고,
아이들도 할머니를 도와드려 가족 여행보다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
시어머님이 그곳에 사시는 동안 1년에 한번씩이라도 꼭 찾아 뵙도록 해야겠다.
자녀들이 좀 가까운곳에 살았으면 자주 찾아 뵐텐데...
건강관리 잘 하셔서 2달후 아들의 50세 생일때 오시면
시카고 시내 구경을 시켜 드릴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3. 6. 14. (금) 경란
추신 : 아들이 한국에 살고있고, 한국인 아가씨와 교제중이라는 분을 우연히 만났다며
그분에게 아들이 한국아가씨와 결혼하게되면 며느리 만큼은 좋은 며느리를 보게될거라고 하셨단다.
그 아가씨가 그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게되면 미국에서 좋은 며느리 노릇은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
제발 그 시어머님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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