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이스트먼(1854~1932)은 필름과 카메라를 발명해 사진을 대중화시킨
발명가이면서 성공한 기업가로서 기업이익을 직원들과 나누고 사회에 환원시키며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실천한 선구자이며, 바른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렇게 산 철학자였다.
조지 이스트먼은 넉넉한 가정에서 2녀 1남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그가 다섯살때 대학설립을 준비중이었던 아버지가 갑짜기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가 투자한 대학설립도 실패하자, 그의 집도 경제적으로로 어려워져
엄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숙을 쳤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는 14살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보험회사 사환으로 취직한다.
그때 그의 첫 주급이 $3 (현재 $84) 로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기에, 주급이 더 많은 일을
하기위해 그는 퇴근후 독학으로 회계 공부를해 7년뒤에 주급 $15 ($420)받는 은행원이 된다.
24살때 친구와 둘이서 여행가기로 했는데 친구가 그 여행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어해
조지는 카메라장비를 구입했다.
그당시 카메라는 전자렌지만큼 크고 무거웠을뿐만아니라 부수 장비들도 많아 사진을 촬영하기위해선
장비만 말 한마리에 실어야했으며, 사용법도 어려워 그것을 배우는데만 $5 주어야 했다.
어떤 사정으로 그 친구와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그는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되고,
좀더 간편하고 편리하게 사진을 촬영 할수 있는 방법을 찾기위해 관련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사진이론에 대한 모든것을 알고나서는 퇴근후 매일 어머니의집 부엌에서 실험을 했다.
그는 너무 피곤해 실험을 하다 부엌바닥에서 그대로 잠들때도 많았다.
드디어 1880년에 건식필름 개발에 성공했고, 회사를 차려 건식필름을 판매했다.
초기에 회사 재정이 어려웠지만 불량품은 모두 교환해 주어서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 남겼다.
그때까지 사진을 촬영하고 나면 카메라를 회사에 보내서 사진을 현상을 하고
카메라를 돌려 받아야해 불편했는데, 1888 년에 간편하게 롤 필름을 넣어 사용할수있는
카메라를 만들었다.
그리고 1890년엔 아이들도 쉽게 촬영할수 있는 브라우니라는 소형 카메라를 만들어
당시 $1 (현재 $25) 에 판매해, 가격도 저렴하고 편리해 누구나 사진촬영이 가능한 시대를 열었다.
그는 또한 일찌기 광고의 중요성을 깨닫아 광고 전단지를 만들어 기업과 일반인들에게 회사와 제품
홍보를 했고, 한세기도 더 전에 글로벌 마켓팅에 눈을 돌려 1885년에 런던에 총대리점을 열었고,
6년뒤엔 영국에 현지 공장을 건설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영상산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계속해 에디슨과 공동으로
영상카메라를 만들었다.
천재 발명가 죠지 이스트먼과 토마스 에디슨
그는 또한 회사가 직원을 행복하게 해주면 직원들이 애사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생산력이 증가한다며
100년도 더 전에 회사이익을 사원들에게도 배분했고, 1899년엔 그가 가진 주식의 1/3 을
(천만달러 - 현싯가 2천 2백억) 종업원들에게 나눠 주어서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했고,
연금 및 각종 복지정책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스트먼은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주급으로 받은 $60 중 $50 를 기부했고, 이후 이후 음악을 좋아해 이스트먼 음악학교
(현재 로체스터대학교) 를 세우고, 직원들 중에 MIT 출신들이 똑똑한것이 마음에 들어 MIT 대학과
아프리칸 어메리칸 학생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져 Hampton and the Tuskegee Institutes (흑인들 대학)와
아이들을 위해 칫과에도 큰 금액을 기부 했는데, 그가 평생동안 한 기부금이 총 1억달러
(현재가 원화로 2조 정도) 나 된다. 로체스트 대학과 MIT 가 그의 기부금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다.
조지 이스트먼씨는 기업경영에 필요한 이론뿐만 아니라 실무에도 밝아 발명가로는 더물게 기업경영에
성공해 록펠로와 카네기, 밴더빌트뒤를 이어 미국내 4 번째 부자가 되었고,
그 부를 사회에 환원해 사회적으로 존경도 받았지만, 말년에 척추협착증으로 고생하다가
1932년 3월 14일에 권총으로 스스로 인생을 마감했다 (향년 77세).
더 많은 기업이익을 위해 대량해고를 서슴치않고, 그 결과 기업이익을 내게되면
전 직원이 아닌 일부 고위층만 독식하는 미국의 잘못된 기업문화와 일부 부유층의 탐욕이
오늘날 미국의 경제위기를 가져온 이유중의 하나이기에 그의 저택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에서 그의 일대기를 보고 난후 이렇게 훌륭한 분을 그때까지 몰랐던것이 죄송스러웠고,
세상에 넓리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왔다.
늦게나마 코닥의 창업자이신 조지 이스트먼씨의 만나 그분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되어
감사했고, 청이님이 아니었슴 이 박물관 방문을 하지 못했을뿐더러 죠지 이스트먼씨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을거라 청이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2011. 7. 19. (화) 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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