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행사

친척들과 고향사람들의 모임같았던 시어머님의 장례식 - 한국과 다른 장례문화

앤드류 엄마 2024. 10. 14. 10:47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2년 전에 
시댁 가까이에 있는
장의사를 방문해 본인의 관도 정해두셨고, 
장례식에 관한 계약을 미리 하셨다.
 
그때 시어머님께선 몇 년 뒤로 미루고 싶어 하셨지만,
두 시누가 적극적으로 시어머님에게 
그렇게 하도록 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시부모님들께서 몇십 년 전에 
 교회 공동묘지에 가족묘를 이미 구입해 두셨기에
시어머님의 장례식에 유가족인 우리가
특별히 따로 준비해야 할게 없었다. 
 
시어머님께서 마지막으로 입으신 옷은 
시댁 근처에 사는 김이 시댁에 가서 
장의사에게 가져다주었다.
 
 시어머님의 조문과 장례식을
돌아가신 그다음 주 금요일에
  시어머님의 교회에서 할 예정이었는데, 
시댁 집 정리도 해야 하고 해
우린 수요일 아침에 출발했다. 
 
미국은 조문도 유가족이 지정한 시간에만 가능한데
보통 장례식 전날 저녁시간에 조문을 받고
다음날 장례식을 하곤 하는데,
바쁜 분들을 위해 조문과 장례식을
같은 날에 하는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도 금요일 오전 10시에 교회에서 조문을 받고, 
12시에 장례 예배를 했다.
여섯 손자들이 할머니의 관의 이동을 맡아
손자들은 9시 20분까지 교회로 갔다. 
 
교회 예배실 앞쪽에
시어머님의 오픈된 관을 모셔서 
유가족들이 먼저 시어머님과 작별인사를 했고,
조문객들이 입장해 유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어머님은 예쁜 화장에   
평생 하신적이 없었셨을것같은 손톱 매니큐어에 
가장 예쁜 옷을 입으시고 주무시는듯했다. 
어머님은 주무시다 돌아가셔서 그런지 
2달 전 97세 생신 때 보다 얼굴이 더 좋아 보여서
 작별인사 드리면서 내 마음이 한결 편했다. 
 
마지막 모습이 예쁘셔서
사진 찍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장례식을 마치고,
교회에서 200 미터 떨어진 교회 공동묘지로 이동했다. 
장례식 참석자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경찰이 도로를 막아주었다. 
 

 

관을 콘크리트로 만든 사각틀 안에 넣고, 뚜껑을 덮어서 묘지에 묻는다. 

 

재미교포들은 관을 묻을 때
관위에 참석자들이 한 명씩 꽃 한 송이씩 헌화를 하고,
인부들이 일을 마칠때까지 묘지에 있는데, 
많은 미국인들은 묘지에서 예배를 마치면 
장의사와 인부들에게 맡기고 돌아간다. 
 

 

장례식에 참석한 시이종사촌들과 그들의 아들부부들과 아들들과 함께
 장례식날인데 웃어도 되니 좋네
97년을 사셨고, 마지막 한 달은 이곳보다 천국이 편안하실 거라 
다들 마음이 가벼웠던 것 같다. 
*둘째 시누는 두 아들들과 먼저 집(내 시댁)에 가서 사진에 없음. 
 
10년 만에 만난 제리를 제외하고는 
지난해 7월에 갑자기 돌아가신
시누남편의 장례식에서 만난 후 1년 만인데,
시누 남편 장례식땐 다들 우울했기에
간단하게 안부만 전했는데,
이번엔 웃으면서 서로의 안부도 전하고,
초대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례식 마치고,
교회에서 준비해 준 점식식사하고,
참석한 사람들과 안부 전하고,
우리 시댁으로 가자고 했더니 
짐이 내일 일을 해 야한 데다
다섯 시간이나 운전해서 가야 하니 
우리 시댁에 갈 시간이 없다고 해서 
  오랜만에 만났기에 기념사진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장례식에 참석한 세명의 시이종들이 아들들뿐이네.
다섯째이자 막내 시이모의 큰딸이자 외동딸 메리조 아들 셋 (한 명만 결혼)
셋째 시이모의 큰딸 펫 아들 셋 (한 명만 결혼)
세째 시이모의 큰아들 짐 아들 다섯 (한명만 미혼)
메리조의 남동생 제리는 의붓딸만 하나 
시어머니가 네 번째이고,
첫째와 둘째 시이모네 자녀들은 동부에 살고 있어 
시댁 경조사에서 못 만난다. 
짐과 다이앤과 그의 아들들은 디트로이트 인근에 살아
다섯 시간이나 운전해야 하는데  
   동부로 출장 간 큰아들만 참석지 못했고,  
     네 아들들(두 며느리)과 함께 참석했다. 
 
시댁이 미시건주 서북쪽끝에 위치해 있어
내 두 시누들과 시이종 사촌들 대부분이 
5시간 이상 거리고,
우린 8시간 반 소요된다.  
 

 

펫의 두 아들들이 두 친구와 함께 와서 
밤늦도록 이야기하다 갔다.
막내인 (그렉 옆) 베리가 외증조부 (그렉의 외조부)와 외갓집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어
재미있게 들었다. 

 

장례식 마치고 늦은 오후에
시어머님과 먼 친척이 되는 캐럴과 데비 모녀와
셋째 시이모의 딸 펫이 방문을 했다. 
캐럴의 딸 데비는 코로나로 갑자기 남편을 잃고, 
올해 친정이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아들이 플로리다로 옮겨서 아들이 있는 근처로 간다고. 
데비와는 페이스북 친구로 사진과 글로만 보다 처음 만났는데, 
 실물보고 엄마와 판박이라 놀랬다. 
모녀가 작은 키까지 똑같았다. 

 
데비가 시댁 가족들 모두와 각자 가족들 사진을 따로 찍었다. 
큰 시누네 둘째가 결혼을 해 아들들 뿐인 시댁에
드디어 젊은 여성이 한 명 생겼다.ㅏ 

 
우리가 한국 살았을 때 미국오기 전에 겨울 방학 2달 동안 두 아들들과 시댁에서 지내며 
아이들을 이곳 학교에 보냈는데,
그때 이 교회 어린이 성경교실 선생님이셨던 셀리여사와 함께 
* 그때 내가 시어머님에 대해 몰랐고, 또 이웃도, 가게도 없는 깡촌의 한겨울 생활에 대해 몰랐기에
그런 간 큰 결정을 했다.  일요일에 교회 가서 이분과 교인들을 만나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장례식날 아침에 메리조(사진)가
French Toast Bake wiht Cinnamon Streusel을 만들어 주어서 
난 소시지만 구웠다. 
 
막내 시이모의 1녀 3 남중 첫째인 메리조는
두 시누네에서 30분 거리에 살고 있어
부활절과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시누들과 함께 하고 있다.  
메리조는 몇 년 전에 남편을 갑자기 잃고는
 간호사에서 은퇴해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수요일에 와서는 토요일까지 함께 머물며
시어머님의 물건 정리를 도와주었다. 
 
토요일에 다들 각자 집으로 돌아갔는데
메리조는 2시간 떨어진 곳에 사는
 그녀의 친사촌을 방문하러 갔다. 
이곳에 온 김에 사촌 만나러 간다고. 
 
메리조와 며칠 함께 하면서 
덕분에 남편의 외조부를 비롯해 
시어머님의 자매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교회에서 준비해 준 점심 
위 세 개는 그날 주방에서 봉사하셨던 분들이 직접 만든 음식들이고, 
아래와 디저트는 교인들이 하나씩 주신 것 들이다. 

 

 

 
다들 같은 시간에 조문을 와서 장례식에 참석하고 식사를 하니 
오랫만인데 서로 엊갈리지 않아 좋은것 같다. 
 이곳에 사시다가 이사를 가셨던 분들도 
 오랫만에 만난 분들과 서로 안부를 전하고,
옛이야기를 나누셨다. 
80년대에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던 
은퇴하신 목사님 부부께서도
먼 길을 와 주셔서 시어머님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우리가 어쩌다 1년에 한 번 시댁을 방문하더라도
 일요일에 예배 마치고 출발하면  
 도로 체증이 심해서 
아침 일찍 출발하곤 해 
시어머님의 교회친구분들 중 아는 분이 몇 분 되지 않았다. 
 낯익으신 분들을 뵈니 반가웠다. 
 

 

시댁에 방 4개에 다블 침대가 6개지만 
작은 시누는 R/V 를 가져와 세 모자가 그곳에서 자고
큰 시누도 캠핑카를 가져와 두 아들과 며느리는 캠핑카에서 자고,
우리 네 식구와 큰 시누와 메리조만 집에서 잤다 
 
우리 목사님께서 교인이 돌아가셔서
방문을 하면 70%가 장례 준비가 되어있지 않더라며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건강과 상관없이 미리 가족들끼리 의논해 두라고 
 말씀하셨다. 
 
내 주변에 한창인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기에
나도 남편과 아들들에게 
난 화장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로에 뿌려 주고, 
장례식 대신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들과 함께 
교회에서 메모리얼 서비스를 해달라고 말해 두었다. 
 
엄마와 여동생과 통화하면서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더니 
 당장 조의금을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었다.
시어머님의 생명보험에서 장례비용이 지불되기에
 미국인들은 조의금을 받지 않으니 괜찮다고 했다.
시어머니와 두 시누는 화환도 낭비라고 생각하기에 
화환을 주고 싶으면 시어머님이 다니신 교회나 
시어머님이 지난 2년 동안 계셨던 곳에 기부를 부탁했다.
미국 내 내 지인들도 조의금과 화환을 보내주려고 했는데 
마음만 받겠다고 사양했다.
 
우리 이웃들은 가까운 사람끼리
  부모님이나 배우자를 잃으면 
십시일반($10 - $20) 모아서 돈을 주기에 그 돈은 받았다.  
  우린 시어머님 교회에 기부 ($200) 하고,
그날 주방에서 봉사하신 분들 점심식사라도 하시라며 ($100)를 드린것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재미 한국인 교회에선 목사님들께 사례비를 따로 드린다는데,
미국에선 장의사에게 지불하는 비용에
목사님과 피아노 반주자의 수고료가 따로 계산되어 있기에 
장의사가 목사님과 반주자에게 지불한다고.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지만,
장례비용도 시어머님이 미리 준비하신 덕분에 들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조문과 장례식에 다른 조문객들보다 
30분 먼저 가는 것 외엔 따로 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장례식날 억지로 슬퍼하지 않아도 되니 
오랜만에 친척들과 고향사람들의 모임 같은 분위기였다.
 
나도 내가 이 땅을 떠난 후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지인들이
내 시어머니의 장례식처럼  
 마음 편하게 나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살다 고생하지 않고,
아쉽지 않을 나이에 자는 동안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 더 들면 그렇게 데려가 주십사
주님께 청탁(^^) 기도를 드려야겠다.
 
2024.  10.  13. (일) 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