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만난 사람들

갑짜기 세상을 떠난 시누남편의 장례식을 마치고

앤드류 엄마 2023. 7. 2. 01:14

큰시누 남편 앨이 폐색전증 (혈전이 폐동맥을 막은 경우) 으로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하고 갑짜기 돌아가셔서
  목요일 오후 조문(4:00 - 8:00p.m) 에 유가족들과 함께 하고,

어제 금요일 장례식을 마치고 밤 늦게 돌아왔다.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침을 많이 했다는데 

 1년전에 은퇴하고는 좋아하는 낚시도 하고, 낚시를 도와주는 

Charter boat 에서 일을 시작했고,

또 6월초엔 2주동안은 본인 보트로 낚시 하느라  

지난 두달동안동안 미시건과 에릭 호수 물에서 보냈기에

감기 인줄 알았는듯.   

* Charter boat 는 유료 낚시 보트로 낚시 전문가들이

탑승해 낚시를 도와주는데

보트가 커서 바다만큼 넓은호수 안쪽 깊은곳까지 가기에

 큰 물고기도 잡고, 낚시도 잘된다. 

 

앨은 처가뿐만 아니라 일찍 사별하고

 혼자 사는 처제네 (작은 시누) 를 비롯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궂은일 마다않고

자청해서 묵묵히 도와주고, 교회 일도 많이 해

 많은 이들이 좋은 사람이었다며

     갑짝스런 그의 빠른 이별에 많이 슬퍼했다. 

 

그는 대학때 차량 정비소에서 일을 해 

자량 정비를 잘 해서 

사람들이 부탁하면 차를 집에서 고쳐주곤한다. 

그의 차고엔 차량정비에 필요한 장비들도 많아서 

우리 부모님과 고모님들이 시누집에 갔을때 

자동차 정비소 하는줄 아셨다. 

 

그리고 근 40년간 근무했던 AT & T 사에선 

회사 고위층에서 30여명이나 되는 그의 옛 동료들에게 

 금요일 근무시간을 통째로

그의 마지막에 동행하도록 배려해 주어서

장례식 시작 30분전에 그의 옛 동료들이

단체로 와서 조문을 하고, 장례식에 참석한후 

고인의 운구차 뒤로 

통신사 장비차들과 트럭들이 줄을 이어서 따라가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동행했다. 

 회사에서 처음있는 일이라고. 

 

앨은 재직중에 회사가 필요하면

주말이나 주중이나 하루 14시간이상씩도 일을 했고,

   명절에도 일할때가 많았다. 

 

앨과 시누는 같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만나

20, 19살에 결혼해 42년을 함께 했다. 

시누는 아이낳고부터 전업주부로 살면서 

10년전부터 서비스 개를 키우고 훈련시켜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자원 봉사를 하고 있어 집안에 개가 몇마리나 되는데,

 집안 청소, 정리를 거의 하지 않아 정말 엉망인데도 짜증내지않고,

  말하기 좋아하는 시누 말 다 들어주고, 

가계 지출은 시누가 원하는 대로 거의 다 하는데도 

부부사이 원만하고, 

또 아들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남편은 제대후 초기에 몇년간 큰시누네 지하실에서 살기도 했고,

큰시누네가 20년전 미시건으로 이사가기전까지 

 앨과 수없이 많은 낚시를 함께 다녔다고. 

 

앨은 우리보다 좋은 낚시 보트 (4인승)를 가지고 있고

시누와 조카 테디도 낚시를 좋아해서 

해마다 Walleye 시즌이면 그의 가족이 에릭호수에서

(Walleye 는 연어와 더불어 호수에 있는 고급어종)

2주동안 낚시를 하기에 

그렉도 해마다 몇일간 앨의 보트에서 낚시를 함께 했다. 

지난해와 올 6월초엔 4일동안 테디가 양보해 줘서

   데이빗이 아빠와 고모부와 고모와 함께 캠핑하며 낚시를 했다. 

 다른 날엔 친구들이 합류했다.   

* 남편도 친구들도 다들 일정 경비를 부담한다.  

 

그렇지만 앨은 말도 없고, 무뚜뚝해서

내가 먼저 인사를 해도 잘 받지도 않고,

사진 찍는것도 싫어해서  

나와 우리 아이들과는 가깝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를 알았던 사람들이나 자주 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속은 깊은 사람이고 좋은사람이라 아니까 괜찮지만,

나와 아이들은 1년에 한두번 만나는 사이라 그렇지 않았다.

 

난 그가 유색인종을 싫어하나 하는 생각에 더 다가가지 않았고,

앤드류와 데이빗이 어렸을적에

"엄마 엉클 앨은 왜 항상 화가 나 있어"하고 묻곤 했다. 

 

그런데 장례식 후 운구차까지

앨의 관을 들었던 친구가 눈물을 훔쳤고, 

친구와의 영원한 이별을 슬퍼하는 

  다 큰 남자의 눈물을 보니 

  갑짜기 남편을 잃은 시누의 눈물보다

      더 크게 전해져 내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그 사람을 보니 앨이 표현을 못(안)해서 그렇지

속정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그와 가깝지 못했던 지난 세월이 아쉬웠다.   

 

장례식 마치고 앨의 친구들이 아들들인 테디와 시제에게 

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위로를 전했다. 

 

자식들에게 이런 무형의 유산이 아버지가 떠난후

아버지 도움이 필요할때 큰 도움이 될거라 

앨의 지난 삶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장례식후 작은시누네에서 만난 르셀은

앨과 대학때 아파트에 함께 산 친구로

 르네(큰시누)와 셋이서 만나곤 했다고.

 

 앨과 르네가 결혼한 후  

혼자 살았던 그는 빨래방 대신 앨과 르네집에서

주말에 빨래를 했다고. 

친구네 세탁실에 동전통을 두고,

 빨래방에 넣는 동전만큼 동전을 넣어서

피자 살만큼 돈이 모이면 셋이서 피자파티를 했고,

  세탁하는 동안 셋이서 함께 스포츠를 봤다고했다.

 

그는 시카고 북쪽에 살아 교통체증으로 인해 

장례식날 새벽 4시에 출발해 왔는데,

평소에도 금요일에 시카고 가는 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한데

  공사하느라 1차선뿐인 구간이있어 정체가 더 심해

숙소에서 자고 다음날 가려고했더니 

시누가 자기집에 방이 있으니 자라고 했다며

그날 시누네에서 잔다고. 

  청소가 아예 안된 집인데...

 

그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엄청 반가와했다.

그의 형이 현재 아이오와주 작은 타운에서 경찰서장을 하는데,

 1980년에 한국아이 셋을 입양했다고.

 형부부는 여섯명의 아이를 원했는데,

세명낳고는 임신이 되지 않아 3명을 더 입양했다고. 

그와 이야기 도중 큰시누네와 야구장 갈 시간이 되어

  연락처를 교환하지 못한게 아쉬웠다.

 

앨의 장례식 날 조카 회사에서 직원들 사은 행사로

마이너 리그 야구장에서 야구도 보고, 음식도 제공하는

직원들과 직원 가족들 초대 이벤트가 있었어  

 시누네 가족들이 모두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짜기 생각지도 못했던 장례식을 하게 되었는데, 

다들 큰시누에게 앨은 네가 그의 몫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것을 원하니 

야구장에 가라고 권했다.

큰 시누도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장례식 마치고, 작은 시누네에서 친척들과 이야기하다

아들들과 르셜과 함께 야구장으로 갔다.

한국이었슴 다들 흉을 봤겠지만, 

난 이런 미국이 좋다. 

앞으로 혼자 있을때 슬플시간이 얼마든지 많을테니. 

 

 교회 예배실에서 장례식 마치고 친교실에서 

 교회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했다.

장례식후 30여명의 앨의 옛동료들을 모두 운구차량뒤를 따라 갔고, 

바쁜 분들 가시고, 점심식사에 남은 사람들

정말 많은 분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셨다. 

교회 신자들이 준비한 점심

장례식 점심식사후 작은 시누네에서

디트로이트에 사는 시 이종사촌 짐과 다이앤은 5년만에 만났는듯. 

조문과 장례식에 참석치 못한 친척들이 볼수 있도록 

페이스 북에 올렸다 

큰시누도 평소 사진찍는것을 좋아하지 않아 시댁 행사때 사진촬영이 조심스러운데

앨의 조문과 장례식때 보여준 사진 대부분이 앨의 독사진들이었기에 

(낚시가서 큰것 잡았을때와 젊은 날은 사슴 사냥했을때등)

큰시누가 느낀점이 있던지 사진에 응했다. 

장례식 전날 조문장 (오후 4시 - 8시)

먼저 상주들에게 인사하고, 고인에게 인사를 한다. 

조문은 장례식 전날 또는 장례식날 오전 몇시간 정해진 시간에만 한다

조문장에서 오랫만에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서

 고인과 어떻게 되는 사이냐고 묻기도. 

우린 가족이라 4시간 내내 자리하고 있었다. 

3주 전에 작은시누네 조카 졸업파티에서 만났던

작은 시누네 시누들과 친구들을 또 만났다.  

 

조문날 만난 큰시누의 오랜친구 셀리와 함께

셀리는 정이 많은 사람인데 부모님 두분다 돌아가셨고,

 남동생들만 셋인 맏이라 시어머님에게 특히 잘해서 고마왔다. 

 

아들이 네브라스카에서 살고있기에 아들집에 갔다가 돌아올때

내가 사는곳 근처로 지나갔다고 해 

다음엔 내게 연락하고 우리집에서 하루 자고 가라고 했다. 

 청소할 시간이 필요하니 24시간 전에 연락하라고.

장례식을 마치고

한국에선 웃어며 사진찍어면 실례지만

미국에선 남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게

  돌아가신분이 원하는거라고 생각하니 

 시어머님이 옷을 잘 차려 입고 계시고,

우리가족이 모두 함께 했기에 기념촬영을 했다. 

 

시어머님께선 심장기능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1년전에 의사가 앞으로 1년 남았다고 했다니 

앞으로 얼마나 함께 하실수 있을런지? 

사람들과 좋은 일로 만나야 하는데...

 

갑짜기 남편을 잃은 시누에게 

12년전에 정말 희귀한 박테리아성 뇌수막염으로

갑짜기 남편(43세)을 먼저 잃은 작은시누와 

몇년전에 뇌출혈로 갑짜기 남편(64세)을 잃은 이종사촌 시누가

 가까이 살고있었어 다행이다. 

    큰시누가 힘들때 두 사람이 많은 위로가 될것 같다. 

  

우리 시누들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네게 농담으로

  그렉이 혹시 긴장하냐고 (다음은 자기 차례인가해서) 하길래 

 아니 다들 배우자를 잃었기에 다음에 내 차례인가 

내가 걱정된다고 웃어면서 말 했더니

 넌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제발 그렉과 나나 시누들과 이종사촌은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고

갑짜기 떠나지 않길 소망해본다. 

 

언제 우리가 어떻게 떠나게 될지 알수 없는데다

 매형과 매제가 갑짜기 이른 나이에 떠나자  

남편은 앤드류에게 

 우리집 재정(금융)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어젯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가족들과 

 앨의 장례식과 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앨이 친가와 소원했던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관계는 나 혼자 잘 한다고 좋아지는것이 아니기에)

잘 살았다고. 

 

난 덧붙여서 앨이 조금만 더 친철하고 덜 무두뚝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테고,

우리와도 더 가까왔을거라며

 아이들과 남편에게 사람에게 친절하고, 

 봉사도 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나를 위해서도 내가 떠난후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도록 하고,

잘 살아서 많은 무형의 유산을 남길수 있도록 해야겠다. 

 

엘의 영혼이 천국에서 평안히 안식하기를!

혼자된 큰 시누가 남은 인생을 잘 살았으면. 

 

2023. 7.  1. (토)  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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