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새벽에 데이빗 태워다주고,
바로 출근해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더니
여동생으로부터 일어났느냐는
카톡이 와 있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있냐고 물었더니
형님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단다.
무슨 그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지난 4년간 그 힘든 항암치료 다 견디시고,
1년전에 마침내 완치 되어서 좋아하셨고,
건강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는데.
모든 일은 주님이 뜻하시는 바가 있으시니
순종해야 하는데,
그래도 하느님이 원망 스러웠다.
어렵게 건강을 다시 찾으셨는데...
댁에 혼자 계시다 쓰러지셨다니
더 마음이 아팠다.
가족들이 시카고 북쪽에 사시니
이 큰 미국땅에서는 그리 먼곳은 아니지만
사돈은 한국관습상 어려운 관계라
그동안 몇번 만나진 못했지만,
고인이 성격이 좋았고,
나처럼 친정가족들이 모두 한국에 살고있어
서로 잘 통해서 좋았다.
그런데 그분이 힘들때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서
자주 연락드리지 못했다.
장례식 조사에서 따님이
엄마는 오지랖이 넓었고, 퍼주기를 좋아했다고.
(그분은 음식솜씨가 좋아 김치, 게장등을 비롯해
음식 만들어서 주위분들에게 잘 주셨다).
나도 오지랍과이니
먼 사돈을 뛰어넘어 더 가까운 관계가 될수있었는데.
* 그날 밤에 고인의 지인께서 가족들과 손님들을 위해
육계장과 게장, 갖가지 나물과 밥을 갖다주셨는데,
100 명은 족히 될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량을 했는데 음식이 다 맛있었다.
배달온 음식을 보니
평소 고인이 퍼준 사랑의 크기를 알것 같았다.
지난달 고인이 환갑을 맞으셨기에 (페이스북 생일알림)
고인과 고인의 시누님께 식사대접을 하려고 했는데
(여동생의 시누님께 몇번이나 신세를 졌기에)
두분이 가끔씩 주말에 일을 하시곤해
셋이서 시간이 맞지 않아 다음으로 미루졌다.
이렇게 갑짜기 가시고나니
약속을 미룬것이 후회가 되었다.
지난 여름 조카가 왔을때
마지막으로 뵈었을때
조카의 고모네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내며
고인과 거실에서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것이
눈에 선하다.
그날밤에 내게 올해가 환갑이라며
환갑을 맞아 한국에 가서 다른것 하지 않고,
시어머니와 한달쯤 함께 지내면서
밥해드리고, 함께 식사를 하며
그렇게 지내다 오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힘든 항암치료 견디신 고인을 생각하고,
또 한국 갈 계획에 좋아하셨던 그분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리고 엄마랑 유난히 친했던 따님을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팠고,
하루아침에 아내를 잃은 사돈과
미혼인 아드님을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팠다.
고인이 학창시절 문학소녀셨는데,
따님이 엄마의 문학적 소질을 이어받았는지
조사를 아주 감동적으로 잘해
참석자들을 울렸다.
심장마비로 갑짜기 돌아가셨기에
모두들 정말 경황이 없었을텐데
한국에서 고인의 동생들이 모두 참석했고,
(여동생 2명과 남동생1명)
또 한국사는 시누와 친구까지 참석해 감동스러웠는데,
둘째 여동생은 여건이 되지 않아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래 더 안타까왔다.
막내 남동생은 여권이 만료되었는데,
외교부 민원실의 협조로
하루만에 여권을 발급받아
저녁에 출발하는
아시아나를 이용해 장례식 마칠때쯤 도착했다.
미국에선 있을수 없는 한국의 관공서의
초특급 서비스에 놀랬다.
장례식 마치고,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이 묶고있는
고인의 댁에서 한국에서 오신분들과
양쪽 사돈가족들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고인에 대한 추억담을 나누었는데,
언니와 형부가 자기들에게 정말 잘해주었다며
형제자매들간의 사랑이 애틋해서
약간 부럽기도 하고,
또 내 동생들에게 조금 미안하기도했다.
처제들이 혼자 남은 형부 걱정을 많이했다.
함께한 그 자리가
고인의 자녀분들 결혼식 전.후로 만난 자리고
고인이 함께 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다음날 제부의 누님께서 다시 가족들과 손님들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난 집주인과 먼저 가서 식사 준비 도와드리고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손님들이 시간이 있었슴
미국 시골구경도 하고,
또 교외 주택단지에 있는
우리동네 구경도 할겸
나도 식사 초대를 했을텐데 ...
다음에 결혼식에 오시게 되면
그때 우리집으로 놀러오시라고 했다.
빈말이 아니라.
그 먼길 오셨는데 참석하신분들이 직장인이라
몇일뒤에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셔야해 죄송했다.
비보를 접한뒤 잠도 못주무셨을테고,
또 시차도 다르니 한국가셔서
몸살앓으시는것은 아닌지...
한국에서 시차적응과 컨디션 적응 잘하시길.
고인이 갑짜기 가시면서
남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교훈을 주셨네.
장례식날 새벽부터 눈이 내렸고,
오후엔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8도쯤 되었는듯.
고 유소양님과 함께 (모자쓰신분)
좀 더 일찍 고인을 알았더라면...
고인이 좀더 오래 사셨더라면...
연락하고 싶었을때 망설이다 그만두었는데,
그때마다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지난 여름 조카가 왔을때
여동생으로 인해 맺어진 인연이었지만,
만나서 반가왔고,
함께 한 시간들 감사했습니다.
천국에서 편히 쉬시길!
2018. 11. 12. (월) 경란
지난 금요일 이후 계속 바빴고,
내일까지 바쁠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 댓글과 블친님 블로그 방문은
시간나는대로 할게요.
'내가 만난 사람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사님의 아내자랑과 엄마들의 자녀자랑에 호응이 큰것은 (0) | 2019.03.11 |
---|---|
추천인이 정말 중요한 미국내에서의 취업 - 내 고마운 동료들 (0) | 2019.02.10 |
메리 제인 시이모님을 추억하며 (0) | 2018.10.05 |
엄청 통 컸던 마크의 50세 생일파티 (0) | 2018.09.24 |
워싱턴여행때 공항으로 찾아온 블로그 독자와의 인연 (0) | 2018.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