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만난 사람들

메리 제인 시이모님을 추억하며

앤드류 엄마 2018. 10. 5. 09:25


메리 제인 맥파랜드

October 29, 1923August 14, 2018 (94세)


지난 8월에 시 이모네 큰딸 드넷이 전화해서는 

울먹이면서 엄마를 호스피스로 옮겼는데,

이제 말씀도 못하시고, 

의사가 몇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이틀뒤에 이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작은 시누로 부터 받았다.   


시이모님이 호스피스로 가시기 1주일 전에

 시이모님의 검사결과를 확인할겸 통화했을때

검사결과 암이라며 많이 침울해 하셨고,

목소리가 많이 피곤하신것 같았지만,

 

3주전에 워싱턴DC 에서 있었던

외손자 결혼식 참석하셨고,

결혼식 일주일뒤에 내게 전화를 하셔서

 신이나서 결혼식 이야기며

 신랑과 신부 자랑을 하셨기에,


난 검사결과에 충격을 받아서 그러신줄 알고,

통증 유무를 확인하고, 통증이 없다고 하셔서 안심하고는

확율적으로 고령일수록 암도 천천히 진행되니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고 위로를 해 드렸는데,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시 이모님은 친정쪽 가족내력으로 10년 전부터

심장약을 복용하셨지만,

지난해(93살)까지 퇴역해군 부인들 모임 멤버들과

볼링도 하고 (본인이 제일 나이가 많은데,

볼링 점수가 제일 잘 나온다고 자랑을 하시곤했다),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혼자 운전도 하셨다.


   결혼식 전부터 다리가 조금씩 부어서

     결혼식 다녀오시고 검사를 받으셨는데,  

시이모님도 나도 그리 신경쓰지 않았는데,

그렇게 빨리 악화되실줄 알았다면

2주전에 통화했을때 I love you 라 말해 드릴걸.


  시이모님은 5녀 1남중 둘째신데,

막내와 첫번째 시이모님들은 일찍돌아가시고,

또 멀리사셔서 몇번 본적이 없기에

그분들을 제외하고, 형제자매들중 가장 정이 많고,

  사교적이고, 여성적이시고, 그 연세에도 귀여우셨다.  


첫번째와 두번째 남편이 결혼후 몇년되지 않아

어린 아이 1명씩을 두고 갑짜기 돌아가셔서

젊은나이에 싱글맘으로 

친정살이를 하시기도 했지만,  

 세번째 남편을 잘만나 부부가 오랫동안 해로를 했으며

사이좋았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후

군인이었던 남편의 연금으로 여유롭게 사시면서

외손주들의 대학 학비를 도와주셨고,

외손주들과 가깝게 지냈고,

군인인 남편을 따라 해외생활도 많이 하셨고,

추억도 많으셨다.


2012년에 가족여행길에 시애틀에 들러

시 이모님과 몇일동안 함께 지내며 많이 가까와진 이후

한달에 2-3차례씩 안부전화를 드리곤 했는데,

내가 전화를 못하면 메리 시이모님이 전화를 주시곤했다.


메리 이모님은 민주당 지지자라

 전국민 의료보험을 지지하셨기에

Fox 뉴스만 시청하며 골수 트럼프 지지자인 아들(미혼)과

 둘째와 세째 여동생(내 시어머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이야기도 잘 하시고, 유머도 있어시고,

정치성향도 나랑 비슷해서

더 대화가 잘 통하고, 또 통화가 즐거웠다. 

내 시어머니가 메리 이모님을 닮았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시애틀은 기후가 서늘해서

시이모님댁처럼 에어컨이 없는 집들이 많은데,

이상기온으로 여름에 가끔씩 30도 이상 올라가기도 한다.

어느 여름에 시애틀이 33도까지 올라가 전국뉴스가 되었을때 

 더워서 어떻게 지내시냐고 시이모님께 전화를 했더니

낄낄 웃으시면서 I'm wearing birthday suit 이라고 하셨다.

(birthday suit 은 태어날때처럼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을 뜻한다).

그러지 마시고 몰에 가시면 시원하니

가셔서 영화도 한편보시고,

 점심이나 저녁드시고 오시라고 했더니, 그래야겠다고.


앤드류 졸업파티때

형제자매들중 혼자 시애틀에 사시는데다

하나뿐인 남동생이 (시외삼촌)이 건강이 좋지 않아

남동생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 함께 한자리에서 만나기가 쉽지가 않기에

다니실수 있을때 인가다인(친정)도 가보시고,

세자매가 같이 우리집에 오시라고.

그럼 Uncle Jay 도 오실테니

우리집에서 형제자매 다 함께 모이시라고

전화할때마다 말씀드려서 오셨는데,

그때 정말 잘 한것 같다.

내 말대로 그날 우리집에서의 만남이  

 마지막이 되었다.


시이모님 댁에서 (2012년)



시애틀 부두근처 레스토랑에서

시이모님과 시이모님의 큰딸인 드넷과 셋이서


남편이 군인(해군)이라 해외 근무를 많이해

현지에서 구입했거나 선물받은 기념품들

거실 한 모퉁이에 있는 책상과 벽에 장식된 시이모님의 가족 사진들


올 여름까지도 텃밭을 가꾸셨다.


앤드류 졸업파티 - 우리집 (2014년)


여동생들과 남동생과 함께 한 시이모님

 막내와 첫째는 천국으로 먼저 가셨고, 남은 형제자매들끼리


시 외삼촌이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가족모임에 잘 참석치 않으신데,

이날은 메리 시이모님이 시애틀에서 오셔서 우리집에 오셨다.

내 말대로 이날이 시어머니네 형제자매가 함께한 마지막 자리가 되었다.


여동생들과 함께



시카고 헹콕타워에서


결혼전 당신들 20대에 시카고에서 직장생활을 하신 이후

60년도 더 지났는데, 그때와 비교하시면서   

시카고가 많이 달라졌다고.

세분이 거동이 불편하지 않으셨으면, 

 좀 더 많이 구경을 시켜드렸을텐데.


메리 시이모님의 첫째 외손녀 캐스린의 결혼식에서 (2016년, 버지니아 주)

 

이럴줄 알았으면 7월 21일 워싱턴 DC 결혼식 (시이모님의 외손자) 에도

참석했을것을.


본인은 혼자서 비행기로 다니기 어려우니

  나보고 시애틀에 한번 더 오라고 하셨는데...


내 시어머니에게 며느리 잘 받다면서 내 칭찬을 많이 하셨다고.

아침에 일어나셔서 커피한잔과 함께 신문을 읽으시며

 하루를 시작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

메리 이모님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들이 그립곤하다.


너무 갑짜기 떠나셔서 많이 아쉬웠지만,

큰병없이 장수하셨고,

가시기 몇일전부터 가족들이 다 함께 한 자리에서

편안하게 떠나셨으니

 나이든 모든 사람들이 희망(소망)하는 대로 

떠나셨으니 축복받은 마지막이라 위안이 되었다.  


시이모님처럼 젊었을때 고생을 하더라도

 중년과 노후엔 편안했으면,

또한 관계 맺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잠깐 만난 사람들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어

떠난 자리가 향기롭기를.


시이모님과의 인연에 감사드리고,

또한 제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신것에 감사드린다.


천국에서 영면하시길!!!


2018.  1.  4. (목)  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