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여행

2년만의 한국나들이

앤드류 엄마 2010. 1. 8. 05:14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부터 한국가는것이 쉽지 않았다.  한국을 가려면 아이들이 학교
다니고 있을때 가야하는데, 내 학기가 끝나는12월은 아이들도 크리스마스휴가가 시작되고,
5월은 친정부모님께서 마늘과 양파 수확철이라 엄청 바쁘신 기간인데, 오랫만에 한국가서
농사일만 도와주고 올수도 없고, 또 친구만나러 다닐수도 없기에. 
마침 운좋게 좋은 강사들을 만나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2주전에 미리 학기를 마칠수있게
허락해주셨다. 
출발하기전까지 과제물들 미리 제출하랴, 중간고사에 기말고사 시험준비하랴 정신없이
바빠 새벽 2시가 넘어 잤는데, 한국에서 2주동안 시차때문이 아니라 사람들과 쌓인이야기
하느라 매일 자정을 넘겼다.

때마침 고종사촌 결혼식이 있었어, 못뵐뿐했던 삼촌과 고모님들 그리고 사촌들과 
근 20년만에 이혼한 숙모까지 만나 많이 반가왔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또 친정엄마도 결혼식 참석하러 서울오시는김에 하루 더 일찍 오라오셨고,
마침 제부가 해외출장중이라 여동생네에서 세모녀가 함께 몇일을 지냈기에 더 좋았다.
시골내려가면 친구들 만나러 다니느라 친정에 오래 머물지 못하기에 엄마가 항상 서운해
하셨기에.

 

무엇보다도 이번이 방문했을때 꽤 오랫만에 만났던 사람들과의 만남이 참 좋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했던 데레사수녀님과 모니카수녀님께서 생각보다 건강해 보여서 더 반가왔다. 

잠깐 인사만했던 첫만남의 인연으로 지난 2년동안 마음만큼 아름다운글로 날 많이 행복하게 해주셨던

모니카 수녀님, 한국에 오면 함께 등산가자고 했는데, 시간상 등산을 갈수 없었어 아쉬웠지만,

처음으로 얼굴마주보고 이야기 나누니 오랜 벗을 만난듯했다.  

아이 유치원 원장수녀님이셨던 카타리나수녀님은 지난번에 방문했을때 제주도에서 재직중이셨어

찾아뵙지 못했는데, 지난해 경주로 전근하셨기에, 잠깐동안있었지만 뵈어서 많이 반가왔다.

수녀님께서 재직중인 근화유치원 원장수녀님께서 손수운전까지 해 주시고, 환대해주신것

이글을 통해 감사드린다.

 

그리고 아직 재직중인 후배를 만나러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에 갔다가 함께근무했던 분들도
만났다.  그때 대리였는데 어느듯 부서장이 되어있었고, 또 한분은 반장님에서 직군을
전환해 차장님이 되어 있었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잠깐동안의 만남이 아쉬워 결국 예정에도 없었던 저녁자리로까지 이어졌다.
예전부터 만나고 싶었는데, 행동이 조심스러워 연락하지 않았는데, 연락하길 잘했다는
생각을했다.   


또한 내가 가장 오랫동안 모셨기에 좋은 추억도 많았던 홍영기 부장님은 현재중견기업의
부회장님으로 재직중이셨는데, 지난번에 연락하지않았기에 많이 서운했다며 꼭 연락하라고
하셨어 함께 근무했던 언니들이 부산과 진주에서 왔기에 함께 찾아뵈었더니 여전하셨다.  
예전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퇴사한 직원과 현재 근무중인 직원들끼리 1년에 서너차례

모임을 갖는데, 마침 이틀뒤에 모임이 있다면서 잠깐이라도 꼭 참석하라고 하셨다.  

난 벌써 퇴직한지 15년이 되었고, 나보다 더 일찍 퇴직하신분들은 근 20년만이라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친했던 분들에게 인사드릴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내모임도중에 잠깐 짬을 내어 참석했다.
내모임에 참석자중에서는 회사그만둔지 언제인데 뭐할라고 참석하냐며 반대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난 나쁜 인연도 아닌데 살아가면서 자주 안부는 전하지 못하더라도 어쩌다
만나게되면 인사하면서 지내며 사는것이 사람사는것이라 생각하기에 참석했다.
창원시내가 크지않아 얼마나 다행인지서울이었으면 마음이 있어도 길이 멀어
불가능했을텐데.

모임장소에 갔더니  40명의 중년남자들이 앉아 있어 많이 놀랬다. (부서에 다 남자직원들
이었고, 사무실에 여직원은 두명뿐이었는데, 여직원중 내가 가장 오래동안 근무했던것같다)
어느새 많은분들은 50대 중반이 되어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었다.
시간이 없어 30분도 안되 일어나야했지만, 하이튼 참 많이 반가왔다.
길가다 만나도 이젠 알아볼수 있을것 같다.
 
양곡팀들은 통크게 또 모텔을 빌렸단다친구말대로 괜히 식당가고 2차가서 담배연기
마시고, 또 다른사람들 떠드는 소리때문에 이야기 방해받는것보단 방빌려서 야식준비해
우리끼리 오붓하게 지내는것이 더 경제적이고 또 분위기도 좋다고 하더니 그런것같다.
하이튼 아줌마 8명이 밤늦게까지 얼마나 크게 웃고 떠들었는지, 미국이어서면 옆방에서
경찰에 신고했으리라
내 친구들이야 2년동안 다들 변한것이 없는데친구네 아이들과 앤드류 친구들은 그동안
얼마나 자라고 변했던지 오랫만에 온것을 실감했다.
아이들 자기전에 만날생각에 일찍 갔더니 다들 학교마치고 학원갔다 10시에 온단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인데...
앤드류친구 규태는 얼마나 변했는지, 길에서 만나도 그냥 지나갈뻔 했다.
미국에선 1년에 한번씩이라도 크리스마스 카드에 아이들사진이나 가족사진동봉해 보내고,
또 항상 지갑에 아이들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오래만에 만나면 보여주곤하는데,
한국사람들 아이사진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어두워서 바다는 보지 못했지만 두후배과 함께 해운대 해변로를 따라 가로등불빛
아래를 산책하며 좋아서 간간히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걷도 또 걸었다.  
마음같아선 밤새도록 그냥 그렇게 걷고 싶었다.  늦은밤이 주는 고요와 평화로움,
(아마 비가와서 산책객들이 없었든것 같다) 그리고 좋은사람들과 함께 간간히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어며, 함께 걸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밤늦게 해변을 이렇게 평화롭게
걸을수있다니...
저녁늦게 산책삼아 동네한바퀴도는것이외엔 밤마실이 없는 곳에서 살다보니 밤에 
신변걱정없이 좋은사람들과 한가롭게 바닷가를 거닐고, 커피숍에서 좋은사람들과
마주보고 있는 이 행복감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한국사람들은 모를것이다.
소소한 일상들이 주는 행복을 당연하고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말고 감사하며 살았으면...
  
미국오기전까지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하나있었는데, 그 모임은 내가 조직한관계로
운영까지 하게되었는데 만난지 벌써 20년이 넘는 꽤 오래된 사람들인데내가 미국온후
지난번 한국갔을때만난후 이번에 2년만에 다들 처음만났단다. 그래 다들 서로 반성하자면서
다음부턴 자주만나자고 했다.   다들 바쁜것은 알지만 그리 멀리 떨어져 사는것도 아닌데
친구라면 1년에 한번이라도 얼굴 좀 보고, 전화로라도 안부전하면서 살아야하지 않는지?
그 모임의 일원인 통영사는 명희는 몇년만에 처음으로 장거리 외출을 해 (2년전엔 내가
통영에 갔었다) 남편이 그날 오랜만에 친구만났으니 자고 오라고 했단다
근데 다른 일행들은 다들 다음날 가족행사가 있어 함께 외박을 해줄수가 없었고,
난 그날밤엔 초등학교때적부터 친구인 정숙이네 가기로 했는데, 명희의 몇년만의
외박을 외면할수가 없었기에, 모텔을 알아보니 쬐다 러브호텔이라 김해까지 넘어가
미애네에서 해결하고다음날 장유에서안경맞추고 나니 시간이 없어 결국 친구정숙이는 
장유에서 창녕까지 태워주면서 차안에서 이야기하는것으로 대신해야 했기에 친구한테
너무 미안했다.
 
주말에 남동생네들이 시골집으로 왔고난 그날저녁에 또 동네 친구들 모임이있었다.
바빠서 개인적으로 다 만날수도 없었는데다, 서로들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기에, 시골에서
함께만나자고 했더니한 친구가 결혼후 여지껏 동네 남자아이들을 한번도 못만났단다.  
고향남자친구들끼리는 1년에 한번씩 계모임을 하기에, 가끔연락하는 친구에게 전화해
올해 계모임을 고향에서 해서 오랫만에 함께 얼굴좀 보자고 했더니, 그날 창녕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우리동네는 성씨와 김가의 집장촌이라 남자이이들은 대부분 내 아제뻘들이고,
난 결혼을 늦게한데다 한국에서 5년간 살때도 명절날 친정에 갔기에 다들 만났지만,
친구는 성씨인데다 항상 시댁갔다 친정오면 남자아이들은 벌써 처가에 갔거나 일부는
제사를 가져갔으니 만날수가 없었고, 예전에 계모임에 여자들을 초대했을때도 안산에
사는데다 늦둥이를 두어 오지 못했다.
좁은 한국땅에 살면서도 20년만에서야 고향친구들을 만나다니.
나도 몇몇친구는 참 오랫만에 만났기에 많이 반가왔는데, 남자친구들끼리도 몇몇은
오랫만에 만나 반갑다며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나이는 못속이는지 초반에 벌써 한두사람씩
술에 취하기 시작했다.  서울, 울산, 여수, 안산등등 다들 멀리서 왔는데다 서로
오랫만에 만났으니 저녁먹고, 노래방갔다가 또 그냥 헤어질수 없다면서 한잔만 더 해야
다면서 간곳이 해장국 집이었는데, 새벽 1시였건만 저녁시간처럼 손님이 붐볐다.
여자친구들끼리도 오랫만에 만났기에 할이야기가 많았기에 집에가지 않고, 그냥 모텔에서
밤새도록 이야기할 생각에 모텔을 알아보니 그 시골에도 전부 러브모텔이고 시설로 영 아이올시다였는데,

5만원이란다.  춥지도 않고 몇시간뒤면 아침이니 차라리 그냥 길에서 이야기
하고 말지 (밤늦게 길거리에 있어도 신변 위험을 느끼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지),
남자들이 기어이 조금 더 저렴한 모텔방을 잡아 주었다.  실내시설은 마찮가지였다.
밤새도록 이야기해야지했는데, 한국오기전부터 잠을 못잤는데다, 도착한후도 계속
강행군을 했기에, 이야기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가족들과 화왕산 등산을 했다오래만에 만났는데 집에 있으면 또 티브만 보고
있을터이고, 산에 가면 가는동안은 이야기를 하게되고, 또 우리집근처는 산이 없기에
한국오면 등산할 계획을 가졌다.   
한국와서 친구들과 산책이나 등산하면서 이야기해야지 했는데, 어떤날은 너무 추웠고,
어떤날은 비가내려 친구네 동네뒷산 한번밖에 못갔다.
어린조카들이 어찌나 등산을 잘하는지 기특했다.  날씨가 좋아 등산객들이 많았다.
오랫만에 등산해서 좋았고, 동생들과 부모님과도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가 있었다.  오랫만에 정상에 서니 산아래 오목히 자리잡은 창녕읍과 옹기종기
보이는 작은동네들과 작은 야산들이 어울어진 우리강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겹든지.
처음미국여행할때 그랜드캐년과 브라이스캐년등 그 규모에 압도되어서 한국이 외소하게
느껴졌는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우뚝ㅤㅆㅗㅅ거나 광활함보단 옹기종기한것이 좋고,
높고 큰산들보단 작은야산들이 더 정겨워진다.
동네근처에 산책하거나 등산할수있는 뒷산하나 있는것이 얼마나 좋은지 사람들은 알까?
등산마치고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순대집에 갔다가 면소재지 시골
식당을 점심시간 지나서 갔는데도 1시간이나 기다려서 먹어야 했다.
서울에서 쇼핑도 해야하고공항에도 아침일찍 나가야해 이틀전에 서울로 올라와야했다.
부모님의 눈물을 뒤로하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2주간이지만, 비행시간에다 서울에서 창녕왔다 갔다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9 일쯤 밖에
되지 않는데다, 친구만나러 다녀야하니2주는 너무 금방이었다
다음번에 올적엔 나도 학교를 졸업한뒤이니, 12월에 오지 않아도 되고, 또 아이들도 더 자랄터이니,

3주정도는 있을수 있을테니 조금더 여유가 있을것같다.
참 엄마 칠순이되니 그때 가면 될것 같다그땐 부모님 모시고 제주도든 일본이든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올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몇몇친구들과는 1 2일정도 여행도 좀 가고.
너무 바쁘게 만나 제대로 이야기도 못나누었기에

올겨울들어 가장추웠던 날, 먼길와준 서울친구들에게 감사하고, 어렵게 먼길와서는
갑짜기 급한일이 생겨 돌아가야했던 인숙이한테도 미안하고, 집빌려주어서 편안하게
친구들 만나게 배려해준 미자와 그 추운날 인사동에서 가격흥정못하는 날 대신해
가격흥정하며 쇼핑도와주신 사모님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백화점 명품매장이 더 어울
리시는 분이신데, 본인은 검소하시고, 남들한테 항상 후하시다)
 
서울서 예전이웃이었던 언니네 집에서 하루묶어면서 집으로 스카이페를 화상전화를 
했더니, 우리가 창원살때 초등학생이었던 재훈이가 벌써 대학생이되었는데, 데이빗에게
누군지 물었더니 Mr.조 란다 (그 언니를 Mrs. 조라고 불렀기에). 
그집은 우리가 미국오기전에 동경지사로 발령나 그곳으로 이사갔는데, 데이빗이 재훈이를
초등학생때 보았으니.. 

아이들이 한국 다 잊어버리기전에 한번 데리고 가야할텐데...
방학때라도 한국아이들은 모두 학원다니니 함께 놀 친구들도 없으니,
이틀도 되지 않아 심심하다며 집에가자고 할터니, 언제쯤 함께 데리고 가야될지?
 
맛있는것 사주고, 귀한시간 내준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선물이나,
여비에 보태고 아이들 선물사주라고 돈까지 주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들이 미국오면 난 그렇게 환대할 능력이 없기에 많이 부담스럽다.
난 남편이나 자식한테나 누구한테 부담스러운사람이 되지 말아야지하는 강박관념같은것이
있기에 부담스러운것을 정말 싫어하니 제발 다음부턴 부담없이 만나고싶다.
 
2년동안 다들 그대로인데 부모님만 많이 늙어셔서 마음이 아팠다.
2년뒤에 뵐땐 더 늙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마이통풍이지만 제발 일좀 줄이시라는
말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이앞에 장사없다고 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많은 농사를 직접짓고계시니.
그렇게 한평생 고생했으면 이젠 노후를 즐기셔도 되는데...
나중에 고생만 한 억울한 삶이 되지 않아야 하기에.
매일하는 기도제목처럼 제발 좀 노후를 즐기시고 또 베푸시면서 살아갔으면...
 
짧은 여행 많은 사람들로 인해 참으로 즐거운 시간들이었기에,
춥고 긴 시카고의 겨울을 외롭지 않게 보낼수 있게될것 같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2009년 마지막날 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