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만난 사람들

자랑스런 내 남자친구

앤드류 엄마 2011. 10. 31. 08:16

 

 

우리동네는 행정구역상 창녕읍에서 속하지만 읍내에서 40분 떨어진 "직신리"라는 작은 농촌마을이다. 

동네는 창녕성씨와 우리일가들인 김녕김가의 집성촌으로 내가 어릴적만해도 마을이 제법 컸으며

아이들이 참 많았다. 

 

우리할아버지는 남아선호를 넘어 남존여비에 가까운 분이셨는데, 손자 일찍 보려고 장남인

아버지가 군대가시기전 스물살에 결혼을시켰고, 엄마가 날 임신했을때 손자라는 확신에

당시로 쌀 몇섬값의 귀한 명약까지 먹이신 분이시다.

그때 우리골목에 가장 늦게 임산부 대열에 합류한 엄마를 비롯 네명의 임산부가 더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 일가들로 우리앞집, 뒷집, 옆집, 또 옆집에서 살았고, 차례로 아들(손자)를 낳았다. 

그런곳에서 내가 태어났으니 할아버지는 하늘을 원망하며 큰소리로 대성통곡을 하셨고

3일간 가출을 하셨단다.

 

하이튼 우리골목엔 나와 같은해에 태어난 그 남자아이들뿐만아니라 옆집 오빠들까지 내를 빼곤

남자아이들뿐이었는데, 난 초등학교때까지 그들과 함께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하며 자랐고,

어릴때부터 여자답지 못하다며 할아버지한테 매번 야단을 맞았다. 

어릴때 집에서 날 공주처럼 키웠더라면(하늘이 두쪽나도 있을수 없는일이지만) 지금같지는 않았을것같다.

 

남아선호가 유별난 동네는 남자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도시로 전학을 시켰고,  

전학갔던 친구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오면 동네 또래들끼리 밤이면 어울려 놀았는데

봉건주의자이신 울할아버지는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며 일가친척들인데도 그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해, 난 할아버지가 출타중일때면 몰래 놀러가곤 했다.    

  

아무튼 동네 남자 친구들은 한동네에서 태어나 어릴때 함께 놀아서 그런지 10년만에 만나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동성친구들처럼 편안하게 만날수 있어 참 좋다.

   

 

 

 

 내 여성성 부족에 한몫했고 울 할아버지가 3일간 가출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의 한명인 앞집친구 김태연

 

앞집아이 태연이는 대학때 오스트레일리아로 Working Holiday 다녀오더니, 학교마치고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서는  현재 뉴질랜드에서 살고있다. 

친구는 그동안 관광업을 하다 관광이 한국경제 사정에 따라 기복이 심해 고용인에게 맡기고 

현재는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래 친구는 업무상 한국을 한해 몇차례씩 방문하지만 나와 엇갈려 만나지 못하고,

가끔씩 친구나 친정엄마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듣곤했다.

그런데 이번에 둘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있었고, 그가 부산에 머물던 마지막날 

내가 부산에 볼일이 있었기에 바쁜시간을 쪼개 그를 만났다.

 

생각해보니 10년전에 내가 친정에 갔을때, 친구는 집에왔다 가는길이라며 골목에서

잠깐 얼굴만 보았던것이 마지막이었기에,  

내가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해 그를 기다리면서 그를 알아볼수 있을까 걱정이 다 되었다.

그런데 그는 그 특유의 얼굴 가득 건강한 미소를 띄었기에 친구임을 알아볼수 있었다.  

그는 내가 하나도 변하지 않아 바로 알아보았단다. 

 

언제나 유쾌하고 낙천적인 친구라 청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것 같았는데, 그도 세월의 흔적을   

비켜갈순 없었는것 같다.  벌써 우리도 몇해있슴 오십이다.

안부를 묻고, 그의 엄마를 통해 친구의 아들이 영재라며 자랑을 들었기에, 아이들 이야기로 이어졌고,

그는 내 아이들에 관해 물었다.

내가 데이빗 이야기를 하자, 그는 여지껏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않았다며 큰아이 이야기를 들여주었다.

 

친구의 첫째아이가 태어났을때 부부가 둘다 직장생활을해, 낮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친구가 아기를 데리고 사무실로 출근했다고.

그리고 첫째아이가 다섯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않았고, 일곱살이 되도록 눈을 맞추지 않아

혹시 자폐인가 싶어 몇달에 걸쳐 검사를 받았는데 아이에게 천재성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단다.

 

비록 아이가 천재라고 판정을 받았지만, 아이가 사회성이 부족하니 고민이 많았단다.

그러던중 큰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자신의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 그 아이가 사회성 부족으로 인해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나요?"

"그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나요?" 아니라고 대답했더니, 스님께서 왈 "그럼 그 아인 부처네요"

하시면서 누구나 다 사회성이 좋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듣고 자신이 그때 깨달았다고.

 

내가 데이빗이 똑똑한 편이라 학교성적은 좋은데, 쓰기를 어려워하고 잘못한다고 했더니,

데이빗이 싫어하고 부족한것을 가르쳐 스트레스를 주는것보단, 좋아하고 잘하는 

수학과 과학에 더 중점을 두어 가르치는것이 더 효과가 클수도 있다,

스티브 호킹도 논문을 자신이 직접쓰는것이 아니고 부인이 도와주었다며,

글쓰기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말고 데이빗을 제 2의 스티브 호킹으로 키워보란다.

 

자기아들도 글쓰기를 잘못하고,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 글쓰기를 보충해주기보단

잘하는 수학과 과학을 더 잘하도록 도와주었단다.

수학은 박사이자 교수인 부인이 가르치다 나중에 대학교수한테 과외를 시켜 국제 올림푸스에서

4위를 했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벌써 장학생으로 입학허가를 받았다고),

과학은 과학전공인 대학생한테 과외로 과학기초부터 과학전반에 걸쳐 아이가 재미있게 과학을

받아들이고, 궁금증을 키울수 있도록 가르쳤단다.

글쓰기는 뛰어나지 않지만, 언어쪽에도 발달해 불어를 비롯 몇개국어를 하고, 

악기도 몇개를 하는데, 아들이 하고싶어 하는것은 다 지원해 준다고했다.

 

 

 

 

현재 아들은 사립고등학교에 다니고 늘 1등을 하는데도, 아이엄마는 아이가 학교마치고

낮잠좀자다 밤에 일어나 잠깐 공부하는것이 불안해 늘 공부 좀 더 하라고 하는데,

자신은 부인에게 아이 그냥 두라고 한단다.

부인은 아들이 의대쪽으로 공부를 하기를 바라지만, 자긴 머리좋고 공부잘하는 아이들이 

할수있는일보단 자신의 아들이 물리학이든 좀더 특별한 분야에 아들 자신이 좋아하고 

천재들이만이 할수 있는 그런 일을 해 인류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아들이 질문을 하면 답을 말해주기보단 넌 왜 그런생각을 하는지부터 묻고, 대답을 하면 

또 왜 그런생각을 하느냐고 계속 질문을 유도해 아이스스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도와준다고 했다.

 

아들이 수학문제를 풀때 보통 아이들처럼 공식대로 차례로 푸는것이 아니라 머리로 바로 계산해 답만 적어

(데이빗도 그런다), 학교선생님이 점수를 주지 않았는데, 캠브리지 수학교수가 자신의 아들같은

경우는 수학을 일반인들처럼 공식대로 하나하나 풀지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기에 그대로

두어야지 일반인들처럼 하게 만들면 수학능력을 퇴화시킨다고 했단다.  그래 친구가 학교로 찾아가

선생님께 그 교수 말을 전하고 수학선생님을 설득시켰다고.  

그리고 명상이 머리를 맑게해주니 아이들에게도 참 좋다며 내 아이들과 명상을 해 보라고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다른사람이 다 데이빗을 자폐라고 해도, 엄마인 난 자폐가 아니라고 해야 한단다.

 

친구에게 너 아들이 아빠를 참 잘만났다고, 우리아이들이 너로 인해 좀더 행복해지겠다며 고맙다고 했다.

부모가 되고보니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것보다 더 어려운것이 자녀를 훌륭히 키우는일이고,

훌륭한 부모가 되는것인것 같다.  그래 훌륭하고 좋은 아빠인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그날 너한테 들은 말들었던 좋은말들 지면상 다 소개하지 못했지만,

난 그말들 기억해서 이제 데이빗을 걱정하기 보단 아일 행복하게 해주고

녀석이 좋아하는 일, 하고싶은것을 찾도록 도와주고 그것을 할수 있도록 도와줄께. 

 

아이키우면서 특히나 데이빗처럼 특별한 아이를 둔 엄마로서 부모교육에 더 열심이어야 했는데,

난 지난 3년 6개월동안 내공부하느라 부모교육을 많이 소홀히했슴을 깨닫았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2011.  10.  30. (일) 경란

 

추신 :  오랫만에 잠깐 친구 얼굴이나 본다고 한것이 아이들 이야기하다보니 오후 2시에 만났는데

어느새 밖은 어두워져있었고, 집에서 고모와 함께 날 기다리고 있었던 고종사촌으로부터

부재중전화가 몇통씩이나 와 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그날 창원가서 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원에 인사드리고, 증권사가서 생각지도않았던

잔금찾아 구좌폐쇄하고, 후배만나 점심먹고, 부산서 이친구 만나고, 마지막으로 고종사촌집에서

고모와 저녁을 보내고 1박하는 일정이었는데, 하루가 넘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