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생각 나누기

목표달성보단 과정을 즐기는 삶이 행복하다

앤드류 엄마 2011. 8. 31. 14:44

 

 

우리집 지하실은 집을 지은뒤 실내마감을 하지 않아 벽과 바닥은 시멘트 그대로고,

천정도 마감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지난해부터 지하실 공사를 시작했다.

지하실 내부공사는 벽만해도 페인트칠하고 석고보드를 붙일 기둥을 세우고,

전선 연결하고, 방한처리를하고, 석고보드를 씌우고, 다시 페인트 칠해야 하니 할일이 제법 많은데,

남편은 사람을 구하지 않고 혼자서 시간있을때마다 아니 하고 싶을때 마다 조금씩 하니

공사 속도가 거북이 걸음보다 더 느리다.

그래 지하실은 지난해 부터 난장판이 되어있는데, 세부자는 전혀 게의치않고 나란히 앉아

시청각을 즐긴다.

내가 평소 깔끔을 떠는 사람이라면 그냥 두고보기 힘들터인데, 이제 천하태평 남편에게

익숙해진데다, 남편을 알기에 빨리 공사 끝내라고 독촉했다간 부부사이만 나빠지니

언젠가는 끝나겠거늘 하고 공사속도에 대한 신경은 꺼고, 공사된 부분을 보면서

가끔씩은 남편을 칭찬해주지까지 한다. 

공사를 마친 부분은 내가봐도 전문가못지않게 잘 했기에.   

 

그런데 우리끼리 있을땐 괜찮은데 한국에서 손님이 왔을땐 쬐금 민망했다.

평소 깔끔하게 정리정돈 잘된 집에서 사는 분들이라 정신없어 하실것 같아 미안했는데,

이 사장님은 남편이 일하는것을 도와주시더니 남편처럼 저렇게 천천히 본인이 

하고 싶을때 하는것이 맞는것 같다며, 한국사람들은 일단 일을 시작하면 빨리 마치려고,

끝날때까지 쉬지 않고 하기에, 일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문데,

남편은 일을 일이 아니라 취미생활하듯 즐기면서 하는것 같다며 내 체면을 세워주었다.

사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듯 했다.

 

 

출근이 늦었는데 텃밭에 물을 주고 있어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날 믿질 못하는건지,

그일이 즐거운건지 남편이 끝까지 했다.  난 아직도 텃밭일이 취미가 아니라 일인데, 남편은 취미인듯 하다.

 

아버진 이주전부터 호스피스 병동에 계시는데,  나한텐 말씀하지 않으시더니, 

우리아이들이 보고싶다고 하셨단다. 한국갈때 아이들을 데리고 갈수없기에

그 병원에 근무하는 후배의 도움으로 지난 주말에 아이들과 스카이페로 화상통화를 했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니 언제나 아버지와의 통화는 쉽지 않다.  

우리가 한국살다 미국온지 벌써 6년이나 지났고, 아이들이 어릴때라 데이빗은 한국에서의

기억이 거의 없고, 앤드류 또한 희미한데, 아버진 앤드류에게 밭에서 경운기 운전했던 기억이 나느냐

물어셨다. 녀석은 경운기 타는것을 워낙 좋아했고 밭고랑길을 쬐금 운전하면서 신나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앤드류가 아버지 대신 경운기를 운전해 (직선길로 천천히) 주어서

아버지가 더 많은 일을 할수 있었기에 녀석을 스스로 얼마나 대견스러워 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한국서 살던 5년동안 일철마다 주말에 일손도우러 친정에 자주 갔었는데도,

녀석이 그렇게 좋아했던 경운기 운전하던것과 벼와 깨, 고추, 고구마, 마늘, 양파, 콩 심고 추수하던 것

도와주던것과, 단감밭에서 단감을 딴 모습들을 사진에 담아두지 않아 참으로 후회스럽다.

미국에서는 할수 없는 일들인데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하기 힘들기에.

 

어른인 우리는 농번기라 부모님 일손을 도와주러 간것이지만,

아이들에겐 할아버지, 할머니집에 간것이고, 놀이고 체험학습같은 것인데,

부모님은 일꾼인 아들딸이 왔을때 일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하길 원했으니

아이들과 놀시간도 없을뿐더러 사진찍고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수확을 좀 적게하더라도 손주들과 아들,딸들이 왔을때 더 많은 일을 하기보단,

좀 쉬엄쉬엄 적당히하고, 손주들 좋아하는 경운기도 태워주고, 저녁땐 고생많았고,

덕분에 일을 많이 할수있었으니 할아버지가 쏜다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장면 한그릇 사주고

했더라면 아이들이 주말에 할아버지, 할머니집에 가는것이 더 즐거웠을거고

우리들도 부모님집에 가는 발거음이 더 가벼웠을거고,

모두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텐데 왜 그래 경쟁하듯 바쁘게 일만하며 사셨는지.

 

아버진 평생 돈을 목숨처럼 여기며 소처럼 일만 하신 분인데, 치료 가망이 없어진 지금,

수술후 모두들 그렇게 일하면 안된다고 말렸던 일을 사람 운명은 하늘이 정한다며 

일을 하시더니 이제서야 후회하시고 돈도 소용없다시니 가슴이 아프다.

 

그동안 안쓰고 모은 돈으로 진작에 농사일을 줄이고 소일삼아 하셔도 되는데,

평생 고생하셨고 엄마도 고생많이 시켰으니 노후엔 좀더 편하게 지내면서

여행도 다니시고, 건강하게 팔순넘게 사신뒤 이만하면 잘 살았다며

가족들과 주위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작별인사를 하셔야 되는데,

남들보다 먼저가시면서 마지막까지 참기힘든 고통을 겪고 계시니

엄만 아버지 병을 억울해 하시고, 친척들과 주위분들은 아버지를 불쌍타하시니,

자식된 난 아버지에게 화가났는데, 점점 쇠약해지는 모습을 뵈니 참으로 안스럽다.   

남들만큼만 사셨으면 아버지도 엄마도 우리들도 주위사람들도

덜 억울하고 덜 안타까울텐데...

 

등산할때 정상을 위해 가기보단 등산하면서 가끔씩 주변 경치도 둘러보고

사람들과 담소를 즐기든, 혼자 사색을 하든 그 시간도 즐기며 걸어야하듯

우리들 삶도 목표달성을 위해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희생하기 보단

그날 그날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고, 사랑을 나누며 더불어 살면 

이땅을 떠날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작별을 할수 있을것 같다.

 

 

 

2011.  8.  30-31. (화,수)  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