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일상에서

미국에서 구한 첫 직업

앤드류 엄마 2010. 1. 8. 01:25

학교 급식소 substitute (결원시 보충역 - 시급 $8.25) 로 채용된지
3주만에 일주일동안 2시간씩 (11시 - 13시) 일 해 줄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다.

비록 학교주방일 2시간짜리지만, 11년만에 또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근하는것
하기에 첫날은 좀 긴장이 되었다.
우리 학군은 유치원과 1학년까지 다니는 학교, 2학년부터 4학년이 다니는
학교, 5,6학년 학교, 7,8학년 이렇게 4곳인데, 난 substitute 라 4개 학교중
필요한곳에 출근해야 한다. 이런점이 좀 어색할것 같았는데, 일해 보니
학교마다 주방분위기도 다르고,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
이 되니 괜찮은것도 같았다.

첫 일주일은 지난해 막내가 다니던 유치원생과 1학년생만 있는 학교에
갔었는데, 유치원생은 오전, 오후반이라 급식은 1학년만 했다.
근데 학교급식이 맥도날드 보다 메뉴만 조금 더 많다는것 뿐이지
대부분 냉동식품들을 데워주고, 과일이나 채소도 주로 캔제품을 사용하기에
배식과 뒷정리할때만 바빴다.

급식의 질이 떨어지니 교사들은 거의 다 각자 점심을 준비해왔고,
학생들도 급식을 이용하는 비율이 6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해 우리아이들도 미국에서 처음 급식을 경험했는데, 나도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들 급식먹는줄 알았기에 점심을 만들어 주지 않았는데,
큰아이가 다음날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cold lunch (도시락) 가져
가겠다고 했다. 그때 점심 집에서 가져오는 아이들도 있는줄 알았다.
한국학교에선 100% 급식이었기에.
처음에 아이가 김밥을 좋아해 김밥을 만들어 주었더니 아이들이 신기하다며
쳐다보고, 어떤 아인 김냄새난다고 놀리고 해, 그 다음 점심은 삶은 계란
샌드위치였는데, 또 녀석들이 냄새 난다고 놀려, 큰아이가 그냥 학교에서
점심먹겠다며 그때 부터 거의 학교급식을 먹었다.
난 당연히 90%이상 학교 급식을 먹는줄 알았는데, 점심을 집에서 가져오는
아이들이 40% 나 되다니. 그 아이들이 가져온 점심도 건강식이
아니라 햄,치즈샌드위치나, 땅콩버터샌드위치에 쿠키정도지만.

그런데 우리 학군은 학교급식을 하루단위로 선택하기에, 130명 학생중
메뉴에 따라 최저 급식인원이 65명에서 최고 103명까지 널뛰기를 했다.
그러니 매일 몇명이나 먹을지 모르기에 항상 95명분을 만들기에 음식낭비도
심하고, 급식하는 아이들은 개인 카드로 매일 계산하기에 카드계산하는
사람까지 있어야 했다.
그러니 103명 급식하는데, 음식만들땐 1명만 필요한데, 배식시엔 배식인원
2명, 카드계산 1명이 필요해, 배식시엔 타학교에서 1명이 지원하러 왔다.
그리고 2명은 뒷정리하고, 1명은 또 급식카드 컴퓨터 입력시키러갔다.

급식한다고 주방은 시설도 엄청 잘 지어져있었고, 기계들도 많았는데,
음식을 만들지 않으니 활용도가 낮았다.

아이들이 한국유치원에 다닐때 한분이 밥하고, 국긇이고 반찬까지 만들어
급식을 책임졌는데, 미국도 공공기관은 인력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것같다.

급식을 월단위든, 주단위든 미리 신청받으면 음식낭비도 줄일수있고,
인력도 줄일수 있고, 또 주방시설이나 인력을 보면 같은 메뉴라도 냉동이 아닌
직접 만들수도 있는데, 학부모와 세금내는 주민입장에서 보니 당장 개선해야
될것 같은데, 난 정규가 아니라 보충역이니 조심해야 하고 (이러면 비굴한것
인데 참) 또 이젠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은 내 동료이니 그분들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하니,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는 있을것
같지가 않고, 그대로 있자니 일하면서 마음이 무겁고...

1학년 급식소에서 경험한 흐뭇한 광경은 1학년은 처음급식을 하기에
학교측에서 점심시간 도우미 2명이 음식이 담긴 식판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는데 아이랑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낮추고 한명한명 아이들에게
Mr. 또는 Miss 라는 호칭을 사용했는데, 어릴때부터 인격체로 대우를 받았
기에 나중에 그아이들이 자라서 타인을 존중하는것 같다.

이번주엔 7,8학년 학교급식소에서 월,화 이틀동안 일을 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인데 배식량이 초등학생이나 비슷하니 저렇게 먹고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도 급식신청자가 60%가 체 되지 않았다.
급식을 시작한 주 목적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먹이는것이었는데,
아이들에게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라고 가르쳐야하는 학교에서 급식이
이런데, 왜 다들 관심이 없는지 참.
한국이었어면 내가 앞장서서라도 개선하도록 했을텐데.

학교 급식소 일을 하니 School District office 에 가서 필요한 서류작성을
해야 했는데, 급식소 직원도 학군에 소속된 직원이라 Superintendent 랑
인사를 했는데, 년봉이 180,000달러이고 박사출신인 Superintendent 는
비서가 있는데도 내 서류들을 본인이 직접 복사를 했다.
한국이어서면 당연히 비서한테 시켰을텐데.

7,8학년 급식소에서는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학교 교장선생님과 인사할때
그냥 이름을 불렀다. 일하시는분들이 50대 후반이고, 교장선생님은 40대
후반쯤 되지만, 그래도 교장 선생님이신데, 내 한국적 사고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광경이었다.

직장에서 상.하관계가 수평적이고, 개인의 인격을 서로 존중해주는점이
좋은것 같다.

빨리 정규직원이 될수 있는 방법좀 알려달라고 했더니, 현재 sub 가 5명인데
오래되고 성실한 사람순으로 결원시 정규로 뽑는다며, 자기도 sub 를 2년동안
했다고 하니 난 아직 더 기다려야 될것 같다.

급식소 직원도 School District 직원이기에, 급식소 일하면서 학교나
District 사무실이 바쁠땐 서류일같은것도 추가로 할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쪽은 Foot in the Door 가 중요하다고.

오늘 지문날인하러 County 사무실에 갔더니, 사무실 사람들이 동료들이랑
잡담하고 있었다. 그들의 여유와 좋은 직장을 가진 그들이 잠시 부러웠다.

ESL 수강신청을 했더니 예전과 달리 수학1,2 와 영어 1,2 시험을 본뒤
반편성을 해주었는데, 첫날 갔더니 ESL 이 아니라 GED (고등학교 검정고시)
코스였다.
그래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했더니 ESL 하기엔 내 엉터리영어가
수준이 높아서 아마 이곳으로 보낸것 같다며, 혹 미국에서 대학갈 생각있으면
자기 수업을 들어라고 했다.
사실은 나도 예전부터 GED 수업을 듣고 싶었는데, 남편이 당신은 그런 수업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해, 받지 못했는데 첫날 수업받아보니 좋았다.
영어와 에세이, 수학, 과학, 사회 과목이 GED 코스인데 난 에세이때문에
시험 PASS 하기 어려울것 같지만, 과목별로 합격처리를 따로 하고,
할수 있는 만큼 해보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대부분 고등학교 중퇴하거나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졸업시험 PASS 못한
20대들 이었는데, 다들 수학이 가장 어렵다고.
난 25년전에 배웠지만, 수학만 쉬웠는데.
그래 수학시간엔 혼자 영어공부하고있다.

내가 가장 연장자인데 어제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미국부인이 수업에 들어
왔다. 쉬는 시간에 왜 이수업을 받느냐고 물었더니, 25년동안 직장에
다녔는데, 자기일이 많이 바쁘고 많이 걸어다녀야 하는데, 몇달전에 사고로
다리를 많이 다쳐, 그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며, 이제 다리는 많이
나았지만, 서서 하는 일보단 이젠 앉아서 하는 일을 해야할것 같아, GED PASS
하면 자기가 원하는 새로운 직업에 구하려면 대학에서 수강해야 한다고 했다.
이젠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인것 같은데, 새로운 직업을 구하기 위해
GED 공부를 하는 그분이 조금은 안스럽게 느껴졌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특별한 기술없는, 낮은 학력의 사람들이 설땅이 점점
더 좁아지는것 같다.

내친구 Judy 는 미국은 똑똑하면 남.녀구분없이 좋은 직업을 구할수 있기에
나보고 대학가란다. 내가 Judy 가 생각하는것 만큼 똑똑한것도 아니라,
GED PASS 하는것으로도 벅차고, 운이좋아 쉰살 되기전에 대학졸업할수
있슴 다행인데.
낯선땅에서 중년의 여자가 그나이에 무엇을 새로 시작할수 있을런지?

한국에서 첫 직장이 결혼전까지 마지막 직장이 되었듯,
미국에서도 학교주방에서 시작해 나중에 사무보조로 끝낼수 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이젠 나의꿈을 이루기위해 전력투구할 나이가 아니라,
내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제대로 찾아갈수 있도록 도와주고,
남편과 함께 가정을 잘 꾸리는것이 우선이기에,
난 작은 울타리에서 작은 행복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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