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한국에서 고모님과 고종 올케언니들과 함께
몇일전에 그동안 보관해둔 우편물들을 정리하다보니 고모님의 편지가 눈에 띄었다.
고모님은 35년생으로 (79세), 어릴때 학교에 그렇게 가고 싶었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여자는 똑똑하면 집안 망한다고
맏이인 고모와 쌍둥이 여동생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밭일을 시켜셨다.
까막눈으로 살수없기에 어릴때 읽는것은 배웠는데,
쓰는것을 몰라 칠순에 자녀들 몰래 한글학교를 다녀 글쓰기를 배우시고,
나한테 편지를 보내셨다.
공부를 하지 않음 계속 잊어버리신다고 고모님은 지금도 검정고시반(월-토)에 다니고 계시는데,
몇번이나 했던 대수술 휴유증이신지 다리를 비롯해 여기저기 아프신곳이 많으신데다
작은 글자들은 돋보기 안경을 쓰시고도 돋보기를 이용해야 겨우 보이신다는데,
이젠 오래보면 눈물이 나서 티브도 오래 볼수가 없으시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근 20년전 고모와 고모부의 회갑기념으로 쌍둥이 두 고모님과 고모부님, 그리고 우리부모님과
미국으로 나들이 오셨을때 우리 아이들이 너무 어렸는데다 농사철 시작되기전에 오시느라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서도 유람선도 못타고 (유람선은 4월말부터 운행한다),
뉴욕, 워싱턴으로 차타고 다니시느라 고생만 하시고,
(그때 찍은 사진을 보니 다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민망해서 올릴수가 없다)
라스베가스까지 가서는 그랜드 캐년을 못 가보셨기에
칠순때 그때 오신분들끼리 다시 오실계획이었는데,
출발 전날 고모부님이 등산가셔서 뇌졸증으로 쓰러져 오시지 못했다.
고모부님께선 몇년 투병하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는데,
고모님께 다시 오시라고 했더니 이젠 다리가 아파서 다닐수가 없다고 하신다.
그래 그때 오셨을때 제대로 구경 다 시켜드리지 못한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고모님의 둘째 아들인 사촌오빠가 대한항공에서 근무해
성수기를 피해서 언제든지 보너스 항공권으로 오실수 있고,
둘째 고모는 딸이 많으니 두 자매가 함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오셨으면 좋겠다.
아래는 서울에 사시는 큰 고모님이 칠순에 한글 배워 처음으로 쓰신 편지다.
* 첫편지를 받은 행운의 주인공이라 더 기뻤고, 연세드셔서 글자를 배워 편지쓰신 마음에 더 감동받았다,
울 아버지께 편지한번 받아보는것이 소원이라 했건만, 그것이 그리 어려운지 끝내 받지못했다.
부산 사시는 둘째 고모님과 진해 구도로에서
난 우리엄마보다 둘째고모와 더 많이 닮은것 같고,
고모의 딸인 사촌들도 자기들보다 내가 자기엄마와 더 닮은것 같단다.
사촌들이 나와 나이가 비슷했기에 내가 학교다닐때 유일한 낙이 방학때 부산고모네 놀러가는것이었다.
울 고모 형편이 정말 어려웠는데, 울 할아버지한테 미친년소리 들어면서 두 딸을 대학공부 시켰다.
(매달 딸들에게 정기적으로 용돈 넉넉하게 받으시니 현명하셨지).
내가 미국에서 학교 다닌다고 했더니 우리 두 고모님은
"그래 사람은 죽을때까지 배워야 한다, 잘 생각했다, 축하한다,
미국에서 공부를 다하고" 라고 하셨는데,
울 엄마 "그 나이에 공부는 뭐할라고 하노" ...
아래는 고모님이 한글을 배우시고,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우셨다며
암호같은 이메일을 보내주시더니 숙달되어 내가 졸업했을때
졸업축하 이메일을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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