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엄마

미국에서 보통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여행, 캠핑

하루로는 부족했던 세계 2차 대전 박물관에서 본 역사

앤드류 엄마 2020. 1. 23. 01:08

뉴 올리언즈에 갔을때

 세계 2차 대전 박물관이 있었어 둘러보았다.


미국은 역사는 짧지만

후세들을 위해

역사의 현장이나 당시 생활을

감탄스러울만큼 잘 보존하고, 기록해

박물관 방문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  


남편이 해군출신이라 그런지

군이나 2차대전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와 다큐멘트리를 좋아해서 많이 보았고,   

 해군, 공군, 항공 박물관들도 많이 다녔기에

다 아는 내용들일것 같아 이번엔 별 기대없이 동행했는데,

박물관 규모도 컸고,

자료와 전시내용이 훌륭해

  시간이 짧았던것이 좀 아쉬웠다.

하나씩 꼼꼼히 보려면 

 이틀도 부족했을것 같다.


3개의 건물로 연결된 박물관

종합관과 유럽관(독일), 아시아 태평양관(일본) 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계 1차 전쟁이 끝난 1918년부터 연대순으로

2차 대전(1939년)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진행되어서 끝이 났는지 알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세계 1차 대전 패전국이 된 독일은 혁명으로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 체계로 전환되었지만,

  막대한 전쟁 보상금과 정치 혼란으로 살인적인 물가 폭등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된다.

이때 히틀러가 부상했고,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고,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략한뒤 침공한뒤

 덴마크, 노르웨이를 비롯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차례로 침략했지만

미국은 1929년부터 10년간 대공황을 겪어면서

그때 조금씩 회복중이었기에 높은 실업율과 경제 침제로 

 국내에 집중해야한다며 참전을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월등히 높아     

 전쟁초기에 개입하지 않았다.  


1939 년 2차 세계 대전 발생시 미국과 독일, 일본의 군사력 비교


1940년 9월에 의회에서 징집제가 통과되어

1945년 전쟁이 끝날 무렵 천 2백만까지 증원되었다.


          

 1940년 1월 여론 조사 결과                                             1940년 9월 여론조사 결과

88%가 독일과 이탈리아과의 전쟁에 반대했고,              52%가 영국을 돕는데 찬성했고,

60%가 전쟁중인 영국을 돕는데 반대했다.               60%가 일본의 세력확장을 제지시키기위한

                     일본과의 전쟁에 찬성했다.            


 1941년 4월 여론조사 결과  

독일과 이탈리아와의 전쟁에 68%가 지지했고,

일본과의 전쟁에 67%가 지지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전임

 진주만 공격 1941년 12월 7일.


참전을 주장했던 대표인사와 단체  

참전을 반대했던 대표인사와 단체 

(아이러니하게도 참전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슬로건이

현재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였다) 


대한민국도 독립기념관같은 곳에

일제에 협력했던 친일 반민족인사들도 그들의 행적과 함께 공개했으면


1940년 9월 16일 징집제가 국회에서 통과되다

징집 등록 대상이 21세부터 45세까지라 놀랬다.

대상자들을 추첨식으로 선정






1942년 8월 대부분의 유럽을 점령한 독일군과

아시아를 점령한 일본군


* 사진 아래 위처럼 박물관 곳곳에 설치된 중.대형 영상을 통해   

 전쟁의 진행상태와 다큐멘트리들을 볼수 있다.






2차 대전에 참여했던 여군들

육군과 해군, 간호, 해병대, 해안 경비대, 공군등

군 전분야에 여군들이 복무했다.


유럽 전투 연합군 사령관들과 나치와 이타리아 사령관들

남태평양 전투 연합군과 일본은 따로


             

1945년 일본 5월 26일의 도쿄와

폭탄 투하된 일본 도시들

(주로 공업도시들)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 (1941. 12. 7.) 이후

1942년 2월 19일 루즈벨트 대통령 특별령에 의해

미국 서부해안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보안상의 이유로

서부 군사지역에 격리 수용되었다.

(약 112,000 명중 62%가 미 시민권자들이었고,

80,000 명은 이민 2세대였다고).


                   

  일본인 수용소

재미 일본인 단체의 요구로 지미 카터때 진상 조사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조사결과 반 국가적인 행위를 한 사람은 미미했고,

인종차별의 산물이었다고.

미 정부는 재미 일본인들에게 사과하고

  1988년에 수용소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1인당 20,000 (현재 48,000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했다.


그리고 전쟁 박물관에 이렇게 전시관을 만들어

미국정부의 잘못까지

사실적인 역사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역사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이곳을 보면서

일본이 식민지 통치기간동안

한국인 남.녀를 강제로 징용했던

과거사를 부인하고,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 정부랑 많은 비교가 되었다.


일본계, 남미계, 인디언등 참전용사현황

일본인 수용소에 수용되었던

가장들과 아들들이

가족들을 자신들의 옛집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참전했다.  


노루망디 상륙작전 당일 상황



연합군의 최후 공습후의 독일


파리 수복

전쟁 막바지에 히틀러는 독일군에 파리를 태우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파리 레지탕스가 일반시민들이 저항하며 파리를 지켰고,

 미국 4사단과 프랑스 2 사단이 합류해 독일군을 물려쳤다.  




1945. 9. 2.

일본의 항복 조약에 서명하는 맥아더 장군


2차 대전에 사용된 군수품들

2,710 척의 군함과 27척의 항공모함과

96,765 개의 폭탄과

86,333 대의 탱크

2,680,000 기의 기관총과

415억 라운드의 탄약

8억 3천3백2십만톤의 원유등과

전사 2,500 만명에

민간인 희생자 3,000 만명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일으키고 전쟁은 끝이 났다.








수륙 양륙차를 둘러보고 있는 삼부자



아시아 태평양 관

상당수의 미군들이 남태평양 전투에서 질병에 시달렸다고.


박물관 곳곳에 참전 군인들의

짧은 육성 증언을 들을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이 땅에 다시는 생명과 재산을 파괴시키는 전쟁이 일어나질 않기를.


2020.  1.  26. (일)  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