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했을 때
83세인 친정엄마와 팔십을 앞둔 숙모와
구순이 넘은 고모가 내게
밥 한끼는 꼭 먹여야 한다고
식사 준비를 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시간이 많았으면
그분들이 식사준비를 못하게
내가 만들어 드리고 싶지만,
재료를 준비하기엔 시간이 없었는 데다
날씨도 덥고,
내 주방이 아니라 가능치 않았기에
사드릴 계획이었다.

숙모가 차린 아침상
장금이만큼이나 음식솜씨가 좋으시다.
그런데 식탁에 음식을 계속 나를때면 감탄이 나오는게 아니라
이 많은 반찬들을 준비하느라 애 써신 숙모 생각에 가슴이 메인다.
난 늘 국없이 1식 1,2찬으로 먹으니 상에 반찬 3개만 해도 많으니
제발 많이 만들지 마시라해도 매번 저렇게 많이 만드신다.
난 저렇게 반찬 종류가 많아도 골고루 모두 다 먹질 못한다.
그렇게 모두 맛있게 먹었다간 숙모가 내가 방문할때마다
저렇게 준비할까봐 마음도 쓰이고.

숙모는 "당신 친정과 시댁 조카들과 질녀들 중에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너가 그 멀리서 왔는데,
너에게 밥 한 끼라고 안 먹으면 너무 서운해서 안된다" 하시며
기어이 아침식사를 준비하셨다.
삼촌은 내 친정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사시니
한국에 가면 꼭 인사를 드린다.
숙모는 호랑이 시아버지의 명으로 결혼하고
맏형님인 내 엄마와 함께 시집살이를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2학년때까지 우리 집에서 사셨기에
나와 더 정이 들었는 것 같다.
숙모는 그 작은 체구로 늘 부지런히 움직이며
살림을 빈틈없이 하시고,
집안도 빤질빤질하게 사시니
늘 바쁘시다.
숙모의 인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집에서 첫째를 출산하다 저 산소증으로
뇌성마비가 된 첫째를 평생 금쪽이처럼 돌봐주면서
세 딸들을 또 공주처럼 키웠고,
(귀하게 커면 결혼후에도 귀하게 산다고),
하급공무원인 삼촌의 박봉에
알뜰살뜰 야무지게 살림하며
세 딸들을 대학공부를 시키느라
평생을 헌신과 희생으로 사셨다.
안부전화 드릴 때 삼촌에게
설거지도 하시고,
집안일도 좀 하시고,
숙모 몸도 마음도 좀 편하게 잘해 드리라고
늘 당부드리곤 한다.
우리집에 오시면 내가 밥도 해 드리고,
시카고 구경도 시켜드릴텐데...
새로운 것을 보면
때와 장소상관없이 고함을치는 맏이와 함께
오실수도 없고,
또 내 사촌들도 일을하니
맏이를 2주씩 맡길 형편이 아니라 못오신
숙모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숙모는 진정한 여행가 이시기도.
내가 엄마와 부산고모와 숙모를 모시고
일본 후쿠오카에 갔을때
숙모의 첫 해외여행이셨는데,
새로운것을 보시곤 꼼꼼히 메모를 하시며
배우셨다.


곧 92세가 되시는 부산 고모님도
"네가 그 멀리서 왔으니 밥 한 끼는 해줘야 한다" 고.
당신 주방이니 나보고 들어오지 말라고.
고모는 아침에 꼭 밥과 국을 드신다.
고모가 아침식사를 다른 것으로도 드시면
내가 남의 주방이라고 가능한 오믈렛이라도 해 드렸을 텐데.
고모댁에 간다고 하면 아침부터 기다리실거라
말씀 드리지 않았다.
지하철 타고 가면서 사촌에게
지하철 역에서 어느 출구로 나와야 하는지 전화를 했더니
고모님이 아파트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계셨다.

고모가 준비하신 아침
아침에 고모가 밥만 하시면 되게
내가 해장국 전문집에 가서 소고기 맑은 국 2인분을 사 왔는데,
(난 돼지국밥이 더 좋지만 사촌언니가 맑은 국이 좋겠다고)
고모는 당신이 만드신 황태국을 드셨다.
내게 주려고 생선을 미리 구워서 다른방에 있는 냉장고에 넣어두셨는데
깜빡하고선 밥을 다 먹을 때쯤 생각이 나셨다. 주방에 있는 냉장고에 넣어셔야했는데.
나보고 생선하고 아침 더 먹어라고.
더 들어갈 배가 없습니다.
고모댁에서 자고 가면 안되었나?
난 사촌들과 고모와 좀 더 오래있고 싶어서
한국갈때마다 친구집 대신 부산 고모네에서 1박을 했다.
고모가 내게 밥을 해주시는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실거라 아침을 먹으면서 마음이 먹먹했다.

고모님이 이렇게 활짝 웃어셔서 참 좋았다

전날 저녁 고모와 사촌들과 기장에서
내가 사야 하는데, 매번 민폐네.


부산 기장

나는 독사진 찍는것 좋아하지 않는데,
고종사촌 언니가 찍어줘서
기장 해산물 식당가 앞바다를 배경으로

아래 사진은 엄마와 동네사람들과 함께

엄마를 잘 도와주시는 집안 아재부부와
엄마 친구이자 내 어릴 때 동네친구 우연 엄마를 모시고
중국 코스요리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엄마에게 잘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인사도 드릴겸
친구들 다 초대하라고 했는데,
다른 분들은 지난번과 같은 이유로
사양하셨다고.
식당을 초대하면 잘 오시기 않으니
집으로 초대해 식사대접을 하려 했지만,
내가 늘 방문하는 5월말이나 6월초엔
마늘 수확철이라 다들 밤늦도록 바빠서
우리집에 식사하러 올 시간이 없으시다고.
거동도 잘 못하는 엄마까지 작은 일손을 보태기도.
시골에선 할아버지가 계신 집은 농사를 줄이지 않아
그분들 돌아가실때까지 바쁘시다.
울아버지 살아계셨슴 미국에서 몇년만에 한국 친정에 갔다
나도 마늘 수확을 도와야 했을듯.
삼촌과 숙모와 사촌도 초대했는데,
하필 그날 비가 많이 내려
숙모께선 운전이 자신 없으셔서 못 오셨다.
삼촌은 운전못하신다.
비가 몇 번이나 억수처럼 퍼붓다 잦아들어 다행이었다.

여섯 가지쯤 나왔는 듯
음식맛과 실내장식과 음식 세팅도 도시의 좋은 식당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데, 가격은 더 비쌌다.

내가 집에서 밥 한 끼도 먹지 않아 서운한 엄마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살면서 많은 농사일에
괴팍한 독재자 시아버지 수발하시느라
일에 진력이 나 만사가 귀찮은 분이신데도
내가 집에서 밥 한끼도 먹지 않은것을 무척이나 서운해 하셨다.
우리 세대들은 손님이 오면 손님 음식상이 신경써이고,
그런 부담가는 음식은 하기 싫어서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데,
나이드신 한국의 노인 분들은
당신 연세는 생각지도 않고,
반가운 사람이 오면 당신 손으로 한 끼를 먹이려고 하신다.
그분들에게 당신이 만든 한끼 식사는 정이고 사랑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맘이 편치가 않았다.
난 얼굴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되는데.
정 집에서 먹어야하면
배달음식이든 뭐든 함께 먹으면 되건만.
한국에선 이젠 집에서 재워주는 사람들도 없고,
서울에선 지방에서 간 친구나 가까운 친척들에게
집에서 차 한잔하고 가라는
사람들도 없는 시대라
그분들의 그 정과 사랑이 눈물겹게 고맙다.
정 많으신 내고모와 숙모처럼
나도 그런 정을 이어가도록 해야 할텐데.
다음에 방문할때에도 부산고모와 창녕숙모,
그리고 엄마를 올해 이 모습으로
다시 뵐수 있었으면.
2026. 9. 13. 일요일 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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